흰 불꽃, 개망초꽃 - ‘비로소 꽃’을 묵상하며
- didimausi
- 2023년 3월 11일
- 3분 분량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완성을 이루고,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을 놓치고 사는 것이다. 다음은 박무웅의 시 ‘비로소 꽃’이다.
그 꽃이 보이지 않는다.
봉항천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흰 불꽃
나는 그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한
흰 꽃무리의 지주(地主)가 좋았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도
마음껏 꽃 세상을 만들어내던 개망초꽃
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다가오지 않던
그 꽃 개망초꽃
땅을 가리지 않는 그
백의(白衣)의 흔들림이 좋았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멈춤’을 생각하니
내가 가진 마음속에 땅을 모두 내려놓으니
거기 시간도 없고 경계도 없는 곳에
비로소
보이는 그 꽃
내 안을 밝히는 그 꽃
내 안을 밝히는 그 꽃
보여야 꽃이라지만
보아야 꽃이다.
나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인 “보여야 꽃이라지만, 보아야 꽃이다”를 묵상한다. 젊어서는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꽃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여진 꽃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인생도 그와 같아서, 나의 명예와 직책과 그 모든 인생의 성공들이 자리를 떠날 때, 시들은 꽃처럼 떨어진다. 구약의 잠언 말씀대로 ‘헛되고 헛되다!’
그렇게 인생의 ‘멈춤’을 생각하니, 내 마음속에 자리한 땅이 나왔다. 그곳에는 시간도 없고 경계도 없다. 비로소 그곳에서 꽃을 본다. 꽃은 그렇게 보아야 꽃이다. 나는 보아야 하는 그 꽃을 보고야 말리라, 다짐해 본다.
스페인 위대한 건축 예술가인 가우디는 어린 시절 관절염을 앓았다. 그는 부모 등에 업혀 가면서 가로수 나뭇잎들 사이로 들어오는 찬란한 태양빛을 보았다. 자연의 빛과 어두움은 그의 예술세계, 건축물을 통하여 생명을 얻었다. 그는 제2의 자연을 창작한 것이다. 가우디에게 대자연은 신이 창조한 세상,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다. 우리 인간 생명도 그 대자연으로 들어가 자신을 다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인간인 것이다. 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다가오지 않던 그 꽃, 한순간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일지라도 내가 보아야 꽃이다. 그렇게 꽃을 보는 이는 다른 이도 그 꽃을 보도록 안내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주워 담았다. “늙는다는 착각으로부터 깨어나세요! 당신 삶 속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신뢰하기 시작하세요! 끊임없이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온전히 영위하는 특권을 얻게 될 겁니다.” 그런 인간만이 자기 삶의 완성을 보고, 비로소 꽃과 새 생명의 구원을 보리라고 믿는다.
이 세상 모든 꽃은 비로소 ‘보아야 하는 꽃’이 필 때, 그 열매로 다른 생명의 씨앗을 맺을 때만 아름답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자아실현과 인간완성을 이룰 때 아름다우며,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때에만 비로소 조물주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고된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인간은 가끔 ‘왜 사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늘 명쾌한 답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 모든 생명체는 그저 주어진 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물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불가에서 말하듯 고통의 바다에 던져진 인생, 자아로 가득한 자신을 내려놓고 대자연의 뜻, 조물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찾아보시라. 그것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자신을 강박하다 보면, 하염없이 떨어지고 만다. 나락으로. 앞서 ‘비로소 꽃’ 시에서 보듯이, 개망초꽃, 흰 불꽃이 창조주 하느님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마음껏 꽃 세상을 만들어내며 자연의 뜻대로 존재하듯이, 우리 인간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뜻대로 마음껏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며 참된 행복을 누려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 창조의 목적이고, 자아실현과 인간 삶의 완성은 그 응답이다.
인생은 언제나 그 허허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꽃나무같이, 외로움 속에 바람 부는 대로 들판의 꽃이 피었다가 사라지듯이, 되돌아올 수 없는 세상을 언젠가는 떠나가니까,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일, 원하는 뜻을 이루고 해야 할 일을 하여, 자아실현과 인간완성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사람은 사랑만큼 산다(박용재 시인)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행복한 삶이란 나 외의 것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식어버리는 불꽃이나 어둠 속에 응고된 돌멩이가 아니다. 별을 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밤에 채인 돌멩이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을 때,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행복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루 한 시간의 행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 남긴 말을 깊이 묵상한다. 법정 스님의 설법에도 인간은 자기 스스로 행복해지는 자아실현과 인간완성을 이루는 실존이라는 말이 있다. 저 들판에 핀 백합꽃들과 같이 자연의 모습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스로 피어나 생명의 씨앗,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스스로 자연 안에 녹아든 인간, 그 인간을, 나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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