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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멤버 안충석(루카) 신부와의 ‘만남’ III

최종 수정일: 2024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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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말라!

     

: 신부님께서는 박정희, 전두환 두 군부독재 정권 아래서 ‘가만히’ 있지 않으셨습니다. 시대의 징표에 따라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분이 살아가셨던 삶을 쫓아가려 했던 행보로 보입니다. 성당 문을 닫아걸고 개인의 구원만을 위한 영적 도피를 거부하시고, 세상으로 길 위로 나가셨네요. 그러고 보면 신부님께서 신학생으로 공부하실 때, 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렸고 이후 세계는 신학적으로 해방신학과 같은 진보적인 사조가 나타났습니다. 한국개신교의 민중신학도 그렇고요. 신부님의 실천적 사제영성에 있어 바티칸공의회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보는데요.

: 그렇지요. 답답했던 교회의 창문을 열었던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이 컸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요즘 시노달리타스도 그렇고 아무리 좋은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사제가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성서 탈출기의 해방 여정이 시노달리타스 아닙니까. 그 해방의 여정에 모세는 끝까지 하느님 백성과 함께했어요. 사제단의 활동도 하느님 백성과 함께 해방의 여정에 나서는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배운 것만으로는 세상의 문제와 가지고 하느님 백성과 함께할 수 없었어요. 주일미사 강론도 사실 많이 묵상하고 공부해야 해요. 나는 보좌신부 시절부터 신문 칼럼이나 좋은 글을 보면 스크랩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 습관은 여전합니다. 다 남들과 나누기 위함입니다.

: 신부님을 뵐 때면 늘 책을 옆에 두시고 스크랩을 열심히 해두시고 손글씨로 정리하십니다.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은 작업을 하시는데, 아주 오랜 습관이신 것 같습니다.

: 저희가 사제단 활동하면서 그저 현장으로 뛰어다니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미사를 하기 전에 공부했어요. 공의회문헌이나 해방신학 이런 것을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우리 활동의 이론적 바탕을 만들어 보았지요. 활동하면서도 공부를 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국기도회를 하면서 강론을 하고 교우들을 설득하기 위한 콘텐츠가 필요한 데, 그것은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묵상한 내용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70~80년대에 가톨릭신자가 부쩍 늘었는데, 특히 세상의 문제에 갈증이 있던 지식인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들어오게 되었죠. 민주화운동 유가족이나 민가협 사람들이 우리 사제단에 많이 찾아왔어요. 어찌 보면 유일하게 호소할 곳이 당시에는 우리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것이 사실 선교, 복음화 아닐까요. 그 시대가 우리 가톨릭교회의 위상이 가장 높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은 게다가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신자 수가 급감하고 있지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사제단의 동력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 사제단 창립 25주년이 되던 해에 유다인 신학자 마크 엘리스가 와서 강연하면서, 교회의 성직자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브로커가 되면서, 성전의 장사꾼이 되었다고 말했어요. 민주화를 위해 사제단이 이루어 놓은 일, 그 열매는 누가 따먹었는가. 여러분은 브로커가 난무하는 교회를 떠날 수 있는가 등 도전적인 물음을 던지기도 했지요. 충격적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사제단,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서 반대받는 표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성모님과 요셉 성인께서 예수님을 봉헌하러 성전에 가셨을 때, 예언자 시메온은 예수님으로 인해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래서 반대 받는 표적이 되어 어머니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고 했지요. 사제의 삶은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감방에 가며 정부에 저항하냐고 했을 때, 신현봉 신부님은 “신부가 그런 일을 안 하려면, 뭐하러 사제가 돼?”라고 반문하셨어요. 사제는 반대 받는 표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시며 확실히 다짐을 받으시고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어요. 사제직은 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며 인간을 사랑으로 구원하는 것이라, 적당히 슬쩍 넘어가는 게 아닙니다.

     

사제는 은퇴가 없다! 성가정생활캠프를 시작하다

     

: ‘반대받는 표적’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신부님이 쓰신 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신부님께서는 독서광이시기도 하지만, 여러 권의 책도 쓰셨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은퇴 후 사목에도 열정을 쏟고 계십니다.

: 젊었을 때,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을 자주 갔었어요. 개신교 목사님 설교집은 많은데, 신부들 강론집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강론을 모아 첫 번째 책 <사랑의 외침>과 <반대받는 표적>을 냈고, 은퇴 이후에는 본당에서 교리를 가르치면서 모아놓은 자료를 정리해서 <그리스도인 신앙생활>, 그리고 나의 삶과 영적 묵상을 담은 <정의와 사랑>, 2014년 광화문광장의 시복식을 보고 감동해서 <한국 순교자의 영성> 등 7권의 책을 냈어요. 앞으로도 대략 세 권 정도 책을 낼 예정입니다. 내 사목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고, 그 나라를 진행시켜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내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고 완성할 수도 없습니다. 백정 출신 황일광 복자 말대로,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 살아나아가기 운동을 위해 <성가정생활캠프>(https://www.holyfamilycamp.com/)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신앙의 혼돈을 겪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이 홈페이지를 열면 나오는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볼께요. “최후 만찬에서 첫 미사를 올리시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고 행하라는 절대사랑의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미사가 끝날 때마다 우리에게 주님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라’시면서 우리를 파견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실천하고 전하는 우리 신앙생활의 정체성, 즉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사랑의 계명 실천의 의미가 상실된 오늘날, 온라인으로 우리의 신앙을 연결하기 위해 성가정생활캠프(HFC)를 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가정생활캠프 가족 신청을 하시어, 예수님-마리아-요셉이 이룬 성가정의 가족애를 본받아 신앙의 활력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이제 나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을 돌아보고 내 몸처럼 사랑하신 사랑의 절대명령을 따르기 위해 주위의 이웃과 친지분들께 권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하여 성가정생활캠프의 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사랑의 절대명령을 따르는 데 앞장서 주셨으면 합니다. 한 가족으로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여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함께 찾아 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성가정생활캠프’(HFC) 이야기를 더 하면, ‘영성강의’와 ‘오늘의 묵상’을 통해 교우들과 함께 시노달리타스, 함께하는 만남의 여정을 가면서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40여년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공동체를 꾸려, 파스카 신앙을 지키듯, 그렇게 온라인 공간에서 <성가정생활캠프>를 시작한 것입니다. 많은 교우가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함께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나가기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주소를 치고 바로 접속할 수 있고, 또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성가정생활캠프’라 치면 바로 연결됩니다.

: 신부님께서는 성가정생활캠프에 사제로서 마지막 열정을 쏟으시는 것 같습니다. 후배 사제들에게도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많이 나눴는데, 마지막으로 후배 사제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 우리 후배 사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항상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도전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흔히 사제(sacerdos)를 ‘알테르 크리스투스’(alter christus), 또 다른 그리스도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요. 이 완전함으로 향하는 길이 사제직의 도전이며 완성입니다. 그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 먼저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으로 사는 삶도 올바르지 않으면서 사제직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 신부님 말씀은 사제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이런 말씀으로 들립니다. 인간으로 올바르게 사는 것이 사제직 수행의 첫걸음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곧 신망애 삼덕을 닦는 일이고요. 이런 인용은 어떤지 몰라도,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은 ‘너는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대로 사제에게도 적용되는 말인가요.

: 그래요. 신부가 그런 말을 들으면 덕행을 닦는 사제가 아니지요. 완전한 덕행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사제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아요.

: 제2의 그리스도, 사제직의 완성, 완덕을 향한 도전. 특히 ‘도전’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인데요. 사제직을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 그래요. 도전해야 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이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죠. 예수님과 같은 사제는 은퇴가 없어요. 죽을 때까지 사제로 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처럼 사제들에게서는 양 떼 냄새가 나야 해요. 그런데 요즘 본당 신부들은 공무원 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어요.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상처 입은 이웃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상처를 매만지고 치료해주는 것이 왜 정치적이죠. 왜 애덕실천을 정치적이라 하지요. 오늘 만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사제는 하느님 사랑에 있어서나 인간 사랑에 있어서나 실패하기에 십상이라는 거예요.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 사랑의 대상자가 없어요. 그래서 사랑이 추상적일 수 있고 사랑의 실패자가 되기 쉬워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기름을 들고 깨어 있는 슬기로운 열 처녀같이 되어야 합니다. 즉 늘 깨어 있어야 해요. 사실 이러한 내용을 매주 강론 쓰듯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있어요. 깨어 있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거지요. 아무튼 55년을 사제로 산 선배로서, ‘먼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사제로서도 완성될 수 없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고, 평생을 신부로 살았으면 사제 냄새가 나야 하고, 앙떼 냄새가 나야 하는 거죠. 미사 끝에 우리는 ‘이떼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라고 말하죠. 미사가 끝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일상에서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이지요. 성체성사는 예수님처럼 나의 몸과 피를 내어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사제직에 도전하는 삶입니다.

: 마지막으로 올해 시국기도회 다니시면서 느끼신 소회가 있다면요.

: 앞서 말한 것처럼, 사제로서 도전 의식을 갖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묵상도 열심히 해서 풍요로운 사제단 시국기도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신부님, 오늘 즐겁고 행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부님이 쓰신 책 <정의와 사랑>에서 인용한 글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어느 평화운동가가 외로이 백악관 앞에서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자 기자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 거로 생각하냐고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려고 이 일을 하는 겁니다.” 한결같이 사제로 살아오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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