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안다
- didimausi
- 2023년 2월 23일
- 4분 분량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언행일치를 보게 된다. 성경도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안다고 말한다(마태 7,15-20; 12,33-37).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당연한 이치이다. 그래서 복음은 “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꺼낸다”(마태 12,35)라고 분명히 말한다.
위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안병욱 교수의 인생론, 『삶의 완성을 향하여』(철학과현실사 1994)를 참고하여 읽어 본다.
그 사람의 인간 완성은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전으로서 그 사람의 결실을 알아볼 수 있다. 행동은 인격의 표현이요, 인격은 행동의 원천이다. 성실한 인격에서 성실한 행동이 나오고, 무책임한 인격에서 무책임한 행동이 나온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행동은 인격의 아들이요, 인격은 행동의 어머니다. 인격을 낳고 기르고 성장시켜서 완성하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생활은 행동의 연속이다. 산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행동은 동(動)이라는 글자가 시사하듯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알면 반드시 행해야 한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말은 중요하지 않다. 행동이 중요하다. 행(行)이 없는 지(知)는 무력하다. 그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과 같다. 우리는 무실역행인(務實力行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실천궁행인(實踐躬行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말은 많고 행동이 적다.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 세상에는 세 개의 중요한 단어가 있다. 첫째는 나요, 둘째는 너요, 셋째는 일이다. 나와 너와 일처럼 중요한 말 것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나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천하의 유일자(唯一者)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너다. 너는 여럿이다. 너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의 아내요, 부모요, 친구요, 스승이요, 애인이요, 동지요, 동료요, 동업자요, 이웃 사람이요, 시민이요, 외국인이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일이다.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다. 세상에 일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일은 내가 정열을 쏟는 대상이요, 보람을 느끼는 사업이요, 내 인생의 목표요, 내 정성을 쏟아야 할 사명이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것 –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인간된 도리나 행동을 다하는 덕행을 닦아 나아간다. 아버지의 뜻을 이행하러 오셨다는 역사적 인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우주 창조 대자연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 질서를 지키는 것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질서 안에 자기 자신이 지켜야 할 자기 분수를 지키는 것 또한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는 것이다. 저마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네 분수를 지켜라. 이것은 인간 생활의 기본 원칙이다. 분(分)자는 칼(刀)로 물건을 양분(兩分)하는 것이다. 분은 나눌 분, 분별한 분이다. 우리는 분별심(分別心)이 있어야 하고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분별심은 올바른 사리판단력(事理判斷力)이다. 분별력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옳게 분간하는 능력이다. 나의 설 자리가 어디고, 나의 할 일이 무엇이고, 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이고, 나의 의미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자기의 분수를 자각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네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선인들은 수분지족(守分知足)을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네 분수를 지키고 네 생활에 만족할 줄 알아라. 분수를 아는 것이 지분(知分)이요, 분수를 지키는 것이 수분(守分)이요,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응분(應分)이요, 분수에 만족하는 것이 안분(安分)이요, 분수에 지나치는 것이 과분(過分)이요, 하늘이 준 재능이 천분(天分)이요, 마땅히 지켜야 할 직분이 본분(本分)이요, 직무상의 본분이 직분(職分)이요, 자기의 이름과 명의(名義)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 할 본분이 명분(名分)이다.
분(分)은 자기에게 분배된 몫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몫이 다르다. 우리는 제 몫을 알고, 제 몫을 지키고, 제 몫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남의 몫을 탐내지 않아야 한다. 학생은 학생의 분수를 지키고 공무원은 공무원의 분수를 지키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분수를 지키고 아내는 아내의 분수를 지켜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일 저마다 제 분수를 지킬 때 그 사회가 평화롭고 질서가 있다.
지족(知足)은 자기의 생활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만족할 줄을 알아라. 우리는 만족과 감사(感謝)의 철학을 배워야 한다. 지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의 마음은 항상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다. 감사하는 것을 배워라(Learn to thank). 감사의 나무에 기쁨의 꽃이 피고 만족의 향기가 풍기고 행복의 열매가 열린다. 만족은 현인(賢人)의 덕이다. 지족은 지혜의 아들이다. 감사와 만족은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요, 천국에 도달하는 계단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우리는 만족하는 것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이미 우리 마음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살아나아가는 것에서 인간 완성의 열매를 보게되고, 거기에서 비로소 그 구원된 인간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최후심판 때 모든 심판 기준을 예수님께서 다음처럼 말씀해주신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31-46).
결국 인간 행동의 결실만이 최후심판의 판단 기준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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