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거룩함
- didimausi
- 2023년 2월 16일
- 2분 분량

우리가 어떤 풍경 앞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그 풍경이 지닌 미적 완벽함뿐만 아니라 그 같은 감정을 우리의 무의식과 의식에서 재구성하는 인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미적 감동의 큰 몫은 사실 우리 자아의 완성과도 연결된다.
“하나의 풍경은 하나의 영혼의 상태다.”_ 알베르 카뮈
모든 문화예술은 인간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이 올려놓는 영혼의 상태라고 묵상하면서, 이산하 시인의 ‘대나무처럼’를 적어본다.
끝을 뾰족하게 깎으면
날카로운 죽창이 되고
끝을 살짝 구부리면
밭을 매는 호미가 되고
몸통에 구멍을 뚫으면
아름다운 피리가 되고
바람 불어 흔들리면
안을 비워 더 단단해지고
그리하여
60년 만에 처음으로
단 한번 꽃을 피운 다음
숨을 딱 끊어버리는
그런 대나무가 되고 싶다.
하늘을 향해 꽂꽂히 서서 살아가는 대나무 인생을 꿈꾸었다. 예부터 대나무는 절개를 지키는 선비를 상징했다. 대나무의 마디는 마치 한 단계씩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영혼의 완성단계처럼 보인다.
풍광이 주는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보면서, 인간 자신의 완성과 연결하여 감동을 받고는 한다. 다시 말해서 창조주 하느님의 모습을 그분의 창조물인 자연과 인간들을 통해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시편 42,1-3).
하느님께 행복과 사랑을 청하는 것은, 마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샘물을 청하는 것과 같다. 내면의 갈증을 말이다. 인간은 누구를 사랑할 때나 사랑을 받을 때 생기는 감정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내가 하나의 ‘나’가 되고 싶은 감정이다. 사랑하는 이를 닮고 싶은 마음, 그의 마음에 닿고 싶은 마음, 모두 그와 일치하여 하나가 되고 마음, 곧 사랑의 감정이다.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보고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느끼는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번잡하고 요란한 삶을 잠시 멈추고 하느님의 아름답고 거룩한 세상을 응시해야 한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성찰하자. 멈추고 바라보고 생각하자. 그러면, 우리는 돌아설 수 있고 먼 하늘을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삶과 일의 복잡함과 얽힘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 무엇인지 자연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절간 처마 밑에 누워서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누워서 바라본다. 땡볕에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꿈인지 생시인지 파란 하늘에서 들려오는 그윽한 풍경소리 세파 바람에 저 혼자서도 구슬피 울고만 있네. 네 풍경이 이 세상 풍광이 되고 나도 그 세상에서 세파에 시달리는 또 하나의 풍경소리 되어서 하늘과 땅에 비는 기도 소리만 그윽하네···. 나 홀로 대자연 속에서 묵상기도 하면서 말이다.
내 영혼의 아름다움과 감정의 근원을 찾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창조주 하느님의 얼굴을 그리워한다. 하느님의 완전하심같이 나 자신도 완전함의 길로 나서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안에 살아계신 놀라운 하느님께서 나라는 인간을 성령을 따라 사는 인간으로서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는 그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으뜸 사도로, 온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살아갔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 성녀들의 삶도 변화시켰다. 성인들은 성령이 일으킨 변화된 삶의 증인들이다. 그분들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살아갔던 분들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