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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묵상 자기만의 신만을 믿는가?




세 번째 묵상


자기만의 신만을 믿는가?


“자기만의 신은 자기 자신만의 삶과 자기만의 공간을 증명해주는 신앙인의 신원증명서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삶’과 ‘자기만의 공간’을 얻고자 분투하는 것은 일상을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것 이상의 문제이다. 그것은 통제와 전복의 문제이고 안팎의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만의 공간은 독립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금지된) 독서, 명상, 게으름, 자위, 지루함, 자문자답, 남의 눈에 안 띄게 자기만의 것을 시험해보기, ‘자기만의 신’을 찾아 영혼 여행을 감행하며 자신만의 삶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내면적 삶의 공간을 확보하고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자기만의 신에 대한 힐레줌의 일기가 실례를 제시하듯이 성직자가 주도하는 종교의 세계를 지배하는 차별화, 경쟁과 독점 주장은 개인화된 신앙운동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제도종교는 오히려 양면적이어서 국경과 종족 경계선을 넘어 인간애를 보장한다는 바로 그런 주장-신앙-을 통해 사람들을 또 동시에 종교적으로 분열시킨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 틈새를 벌려서 오히려 종교의 평화 수행능력을 의심하게 만든다”(울리히 벡, 『자기만의 신-우리에게 아직 신이 존재할 수 있는가』, 30쪽 참조).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공동체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의를 따른다면, ‘자기만의 신’을 믿는이는 교회공동체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신앙인의 정체성 문제가 발생한다. 미구엘 드우나브노 시인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신을 믿는 것

아무런 열정도

마음의 갈등도

불확실한 것도, 의심도 심지어는 좌절도 없이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신에 관한 생각을 믿고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만이 생각한 자기만의 신을 믿는 것이다.

류시화가 엮은 인도 우화집,『신이 쉽표를 넣은곳에 마침표를 찍지 마라』(147-150쪽 참조)에서 ‘거울에 비친 너와 나’를 계속하여 묵상해본다.

북인도 우타르 프라 테시주의 간푸르(산스크리트어로 ‘지혜의 마을’ 이라는뜻)에 현명한 스승이 살았다. 그에게 오랜 제자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의 방으로 가서 말했다. “너는 잘해 오고 있다. 그래서 너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나 주고 싶다.” 그 말을 하며 제자에게 거울을 건네주자 제자는 의아해했다. “스승님, 이것이 특별한 것인가요? 제가 보기엔 단지 거울일뿐인데요.” 스승이 대답했다. “이것은 평범한 거울이 아니다. 이 거울은 밖에 보이는 것을 비춰 주기보다는 내면의 것을 비춰 줄 것이다. 또한 이 거울은 소유한 사람의 마음과 특유의 감정을 보여 줄 것이다. 이제 세상으로 가서 이 거울을 현명하게 사용하라.” 제자는 약간 놀랐지만 스승의 선물에 감사드리며 거울을 들고 고향의 집으로 떠났다. 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그는 자기 스승님께 돌아와서 그 거울을 돌려 드리면서 “이 거울 속에 비춰 본 자기 집식구들의 내면은 온통 다른 친구들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다시 그 자리를 떠나 내가 아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가 보았지만, 여전히 제가 본 것은 그들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들이었어요. 이 거울은 저에게 슬픔만 가져다주었어요. 제발 도로 가져가세요. 저는 갖고 싶지 않아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던 스승은 제자에게 다시 거울을 건네며 물었다. “이 특별한 선물을 현명하게 사용하라고 너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느냐?” 제자가 말했다. “네, 기억합니다.” 스승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는가?” 제자는 스승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침묵에 잠겼다. 잠시 후 스승이 말했다. “너는 이 거울을 가져가서 다른 사람들을 전부 비춰 보았다. 하지만 사실 이 거울은 너 자신을 비춰 보는 데 사용했어야 했다. 겉모습에 가려진 너의 내면, 너의 감정과 생각들을, 그리고 내가 말했듯이 이 거울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판단할 때의 너의 내면도 비춰 준다. 네가 거울 속에서 본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사실은 너의 마음과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보는 모든 것은 너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 거울이 특별한 선물인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이 자기만의 신만을 믿으려는 유혹은 인류 첫 조상 아담과 이브의 창세기 이래로 존재하는 유전인자로 원죄의 바탕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자기만의 신이 되라고 유혹자의 유혹에 인간은 빠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신앙인이든 무신론자든 자기만의 신에 대한 맹신과 광신자로서 자기 우상화에 빠져 자신만 옳고 다른 이들의 생각과 견해는 거짓 우상이라는 분리진영애의 수렁에 더욱 빠져서 들어가는 형국이다. 자기만의 신, 우상의 생각과 판단으로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는 편견과 확증편향 등은 요즘 유튜브나 SNS매체를 통해 더욱 선동되고 자기만의 신이 되려 한다.

이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을 말하는 상식적 진리나 경우에도 정면으로 모순인 자기만의 신을 전파하는 맹신과 광신과 사이비 종교의 전형이다. 그 해결책은 성서 말씀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인간의 정도(正道)를 걸어가야만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생각이나 판단과 진리라는 것은 반드시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온전히 주관적인 기준만 따른다면, 그것은 독단과 독선에 불과하다. 한 저널리즘 교수는 우리나라 문맹률은 1% 미만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문서를 읽고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 파악하는 실질 문맹 즉 문해력(literacy)의 정도는 OECD 22개국 중 최하위권 수준이라고 한다. 인정하기 싫은 팩트이다. 요즈음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중시한 지 오래되었다. 어떻게 가짜뉴스에 대처할 것인가는, 대략 세 가지 방향이 있다고 한다. 디지털 미디어 뉴스에 대한 법적 규제와 팩트 헤킹 시스템 강화,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로 정면 대응해야 한다고, 그 교수(김지영 세명대 초빙 교수)는 제안한다.

미디어 혁명의 부작용과 역작용도 순기능 못지않게 태풍처럼 휘몰아쳐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디지털 새 시대에 새로운 까막눈들에게 분별의 판단력 교육으로 우리 공동체에 공동선과 가치관 형성에 그 일획을 감당해야만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많은 우리 디지털 미디어시대에 악령은 진리의 성령으로밖에 물리칠 수 없다는 성서 말씀 그대로이다.

다음의 일화는 가짜뉴스를 물리치고 빛으로 나아가자는 비유로 적합해 보인다.

어느 여행자가 히말라야 높은 산골짜기 교회에서 예수 성탄미사를 참여했다. 교회 가는 길도 그렇고 교회 안에도 온통 어두움만 가득한 것 같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한밤중이었다. 안내인이 자기에게 촛불 한 개를 주면서 예수 성탄미사 때 촛불을 켜고 미사를 드리라고 했다. 예수 성탄미사 전례가 시작되자 주레 사제가 성탄 대림초에 불을 붙이고, ‘그리스도의 빛’이라면서 어두운 교회 안으로 입장하자 저마다 손에 든 촛불에 불을 켜지고 순식간에 교회 안은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어버렸다. 안내인은 그 여행자에게 당신이 지금 앉은 이 자리는 며칠 전에 돌아가신 교우분 자리로서, 그 교우 대신 당신이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니까, 이 교회와 세상의 어두움은 그만큼 물리칠 수 있으며, 그만큼 더 밝은 우리 사회와 세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가짜뉴스나 어두움만 교회와 세상에 전파한다면, 진리의 그리스도의 빛으로 이를 물리쳐야 팩트 가 더 잘 드러나지 않겠는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어두움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내가 이 세상을 이겼노라!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보나벤투라는 말한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에페 5.8)이라고 합니다. 사실 희망과 실천하는 사랑을 갖는 믿음은 영혼을 치유하고, 치유된 영혼 자체를 정화하며 고양하고 하느님을 닮게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대신 우상을 받아들이듯이 진리 대신 거짓을 받아들이는 잠자는 사람들처럼 있지 않고, 오직 참된 빛 안에 있을 것입니다(「창조」, 강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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