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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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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부셰, 세상의 빛(La Lumiere du monde, 1750)

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그의 에세이 『삶의 완성을 향하여』(철학과현실사 1994)에서 인간의 실존을 이렇게 정의를 한다. “인간은 자주독립의 생명체요, 유일무이한 인격체요, 신성불멸의 광명체(光明體)이다.” 성경에서는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식들’을 나누어진 인간 집단이 등장한다.

창세기 1장 첫 절부터 어둠과 빛이 세상을 감돌면서 창조이야기가 시작한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천지창조, 대자연 삼라만상이 다 빛의 옷을 입고 빛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빛의 우주 안에 있는 빛의 인간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해가 뜨면 먼지도 빛난다”라고 노래한다. 아침에 햇빛이 방안에 가득 차면 먼지도 빛을 발하면서 춤을 춘다. 하느님은 빛의 창조자이시고 그 빛은 하느님을 반사하고 창조주 하느님을 우리에게 전하여준다. 서양에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것을 안병욱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마음에 태양(太陽)을 가져라. 입술에 미소(媚笑)를 가져라. 그리고 용기(勇氣)를 잃어버리지 말라.” 간결하지만 우리에게 희망과 용가와 힘을 주는 생활시(生活詩)다.

우리는 마음에 태양을 가지고 인생을 밝게 살아야 한다. 태양은 세 가지의 덕(德)을 갖는다. 첫째는 밝고, 둘째는 뜨겁고, 셋째는 힘차다. 광명과 정열(情熱)과 역동(力動)은 태양의 세 가지의 중요한 속성이다. 우리는 태양을 배우고 태양을 본받고 태양처럼 살아야 한다. 나는 이러한 생활 태도를 태양주의(太陽柱義)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태양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태양은 첫째로 밝다. 태양은 위대한 발광체(發光體)다. 태양은 광명 중의 광명이요, 빛 중의 빛이다.

태양은 지상 최대(地上最大)의 광명이다. 태양은 빛의 왕자(王者)다. 세상에 태양처럼 밝은 것이 없다. 아침에 해가 뜨면 온 천지가 밝아진다. 저녁에 해가 지면 온 천지가 어두워진다. 만물은 태양의 빛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태양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태양의 광명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태양처럼 밝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태양처럼 밝은 마음, 밝은 눈동자, 밝은 얼굴, 밝은 미소, 밝은 표정, 밝은 생각, 밝은 인격을 가지고 밝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년)가 갈파한 바와 같이 인간은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이다. 모든 동물은 본능과 충동과 감성적 욕구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은 의무와 당위(當爲)의 의식을 가지고 이성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인간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도 많지만, 마땅히 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 이것이 의무와 당위의 행동이다. 이러한 능력을 이성이라고 한다.

철학자 칸트가 강조한 실천이성(實踐理性)은 이러한 이성을 대표한다. “너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Du kannst, denn du sollst)라고 칸트는 갈파했다. 이것은 인간의 당위 의식을 강조한 말이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에게 도덕적 명령을 부과하고 그 명령에 스스로 복종하여 행동하는 의지의 힘을 갖는다. 이것이 이성의 힘이다.

이성[Vernunft(獨) Reason(英) raison(佛) Nous(希) Ratio(羅)]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인 동시에 도덕적으로 실천하는 윤리적 능력이다. 인간은 로고스(Logos)의 존재인 동시에 파토스(Pathos)의 존재다. 그리스어 로고스는 말이요, 이성이요, 이론(理論)이다. 파토스는 감정이요, 정열이요, 정념(情念)이다. 인간은 밝은 로고스의 원리보다도 뜨거운 파토스의 원리에 더 많이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으로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어두움의 자식으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비치는 유일의 등불이 이성이요, 인생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의 지팡이가 양심이다.” 이성의 등불과 양심의 지팡이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존귀한 인격적 존재가 되었다. 이성은 신(神)이 인간의 마음 속에 켜놓은 밝은 등불이요, 양심은 인격 속에 있는 깨끗한 신전(神殿)이다. 이성은 총명한 사리판단력(事理判斷力)이요, 양심은 올바른 도덕적 판단력이다.

이성과 양심은 마치 신체의 폐와 심장과 같다. 이성은 인간의 최대의 광명(光明)이요, 양심은 최고의 권위(權威)다. 이성은 인생의 등불이요, 행동의 나침반이다. 양심은 인간의 재판관이요, 존엄한 채찍이다. 모두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보배다.

이성은 물의 이치를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성은 보고 듣고 하는 감각적 개념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일 뿐이다.

이성이 정열을 정복하느냐, 정열이 이성을 지배하느냐, 이것은 인생의 중대사다. 이성이 없는 정열은 맹목이고 정열이 없는 이성은 냉냉하다. 이성은 정열의 방향을 지시하는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한다. 정열은 인생의 강한 힘이요, 이성은 인생의 밝은 빛이다. 그러므로 이성과 양심의 조화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우리는 철학자의 밝은 이성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예술가의 뜨거운 정열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양심(良心, conscientia)은 착한 마음이요, 올바른 도덕적 감각(Moral sense)이다. 양심은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악을 피하고 선을 선택하며 선을 행하면 만족과 기쁨을 느끼고, 악을 범하면 고통과 가책을 느끼는 도덕적 판단 능력이다.

철학자 칸트는 양심을 내적 법정이라고 하였다. 양심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의 재판소다. 양심은 나를 법정에 불러내어 고발하고 심판하고 비난하고 책망한다. 인간은 악을 범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가책은 꾸짖고 책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의 양심을 속일 수는 없다. 양심은 침묵의 언어로 말한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과 같이 양심은 인격의 엄숙한 소리다. 양심은 나의 가슴 속 깊은 데서 들려 오는 진실의 빛이요, 빛의 자녀로서 살라는 하느님의 절대명령인 것이다. 이성도 우리를 빛의 자녀로서 살아나아갈 수 있도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빛이다.

이성의 빛(光明)은 생명과 사랑의 에너지 발광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빛’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천명하셨다. 주님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빛 안에 거닐고 빛 가운데서 산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지 어둠의 자녀인 악령의 자식들이 아니다. 빛 자체이신 성령께 격려되는 이는 다 하느님의 자녀이며 빛의 자녀들인 것이다. 우주 삼라만상이 태양 빛을 받아서 자신의 실존과 생명을 반사하고 들어오듯이 우리 인간도 빛 자체이신 성령의 빛을 받아서 격려되는 이는 다 하느님의 자녀이며 빛의 자녀들인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손 켈리가 함께 쓴 철학서 『모든 것은 빛난다』(사월의책2013)에서 저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무기력과 탈진의 시대라 일컫습니다. 이런 시대에 각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바꿀 거창한 계기를 헛되이 기다리거나 자괴감만 남길 자극적 쾌락에 탐닉하는 대신 자신의 일상을 감사와 경이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눈을 가진 이들만이 평범한 일상이 품은 ‘빛나는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소개하는 한 우화가 이러한 삶의 태도를 잘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한 지혜로운 스승이 자신의 두 제자를 하산시켜 세상으로 보내며, 만일 ‘세상의 모든 것이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인생은 복될 것이라 이릅니다. 하산 후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한참이 지나 두 제자가 다시 만났을 때, 한 제자는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다 겪으며 결국은 모든 것이 빛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씁쓸해합니다. 여기에 다른 제자가 행복으로 빛나는 얼굴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든 것이 빛나는 것은 아니라네, 빛나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지”(최대환,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파람북 2018, 262쪽).

인간은 빛 자체이신 성령의 빛을 받아서 반사한다. 그리하여 인간 삶에 있어 모든 것은 빛날 수 있다. 진리의 성령 빛을 받아 반사하지 않고, 거스르는 거짓의 아비인 어둠의 자식들은 자기 할 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 역시 빛과 어두움 대결의 장이다. 어둠의 자식들과 같은 군사독재나 민주화에 역행하는 정치권력자들이 있고, 광명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빛의 자녀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권력을 잡아나갔다. 국민의 이성과 양심이 깨어있을 때, 세상은 좀 더 빛을 향하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 국민의 이성과 양심의 선택결과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인간의 죄와 어둠의 힘은 크다. 그러나 선과 사랑이 발하는 빛의 힘은 그보다 더 크다. 성경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어둠의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뿐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인류의 역사는 성령과 함께하는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식들 간의 투쟁의 역사이다. 구약성경 역대기, 열왕기도 그 시대 왕들이 성령과 함께 선과 악의 왕국의 기록을 전해준다. 성령과 함께하여 선과 진리,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확고한 믿음을 잃지 말자.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림자가 있다면, 그 그림자에 가까이 어딘가에서 빛이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어느 현인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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