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숲의 생각하는 나무처럼 살자! - <신영복 평전>을 읽고 나서
- didimausi
- 2023년 9월 15일
- 7분 분량

<신영복 평전>(돌베개 2019)을 읽었다. 그가 말하는 ‘더불어 숲’에서 생각하는 나무로 살았던 분, 유신시대 암울한 유배지에서 사색의 꽃을 피우고 결실을 본 신영복 선생의 삶을 돌아보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리었다. 그는 이미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책을 통해, 생각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 명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그의 존재 자체는 그의 사색에서 왔다. 아니 그의 사유가 그의 존재를 규정했다. 쇠귀 신영복 선생이 남긴 어록들과 사유의 흔적은 이제 우리에게는 그의 소중한 당부가 되었다. 불행한 역사가 계속 되풀이되고, 우리가 여전히 악순환 소용돌이 속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선생의 말씀은 여전한 울림을 주기 때문에, 그의 말씀이 ‘쇠귀에 경 읽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아름답게, 자부심 있게, 그 자체를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왜냐면 그래야 오래 버티니까.”
작은 숲(공동체)을 많이 만들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작은 약속도 하고, 그 ‘인간적인 과정’을 잘 관리하면서 가는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스승이란 존재는 한 사람의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 그가 맺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제자이자 동시에 스승이며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연쇄를 확인하는 것이 곧 자기 발견’이라는 쇠귀의 말 역시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함께 공부하고 더불어 학습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벗이며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함께 공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 되는 관계. 그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바로 쇠귀가 이야기하는 ‘더불어 숲’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먼 길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숨 쉴 수 있는 더불어 숲의 공간을 하나둘 만들어 가는 것이 쇠귀가 생각한 사회 변화의 길이다고 하셨다.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나무는 나의 내부에 심은 나무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가슴을 헤치고 외부를 향하여 가지 뻗어야 할 나무입니다”(‘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중에서).
쇠귀는 ‘인생의 책’으로 <논어>, <자본>, <노자>를 꼽았다. <논어>는 인간주의 선언이고,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관한 이론이고, <노자>는 자연에 대한 최고 담론이라고 생각했다. <논어>와 <자본>은 사회관계를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노자>를 인생의 책에 넣은 이유는 반자연적 서구 문명을 극복할 전망을 찾고자 하는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쇠귀 사상의 궤적을 보면 왜 세 권의 책을 꼽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논어>는 중국 최고의 고전이자 ‘인간관계론의 보고’고,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를 규명한 최고의 책이다. 흔히 ‘도덕경’이라 부르는 <노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이 만든 ‘건축 의지’를 깨기 위한 책이다. 앞서 정리했듯이 쇠귀 사상을 형성한 세 축은 훈습된 유교적 사유와 선비 정신, 4·19 혁명을 겪으며 학습했던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사회과학’, 감옥 속에서 각성을 통해 재구성한 ‘관계로서의 인간학’이다. 쇠귀가 꼽은 세 권의 책은 각각 훈습, 학습, 각성을 대표하는 책인 셈이다. 이 세 권의 책은 고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 형성을 이룬 책으로서 쇠귀같이 인간 내면의 소리를 충실하게 들으시면서 생각의 반추를 통하여 그 생명력을 강의나 글이나 말로서 긴 여운의 메아리를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다. 고 신영복 선생의 삶과 사상 저술과 말씀의 세계는 결코 분리되지 않고 선생님은 말과 글과 삶이 어긋남이 없어 언행일치의 증거의 삶을 생의 절반 이상 감옥살이에서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핵심 내용은 관계론적 인간학에서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상과 시대, 사상과 사회, 사상과 사람은 분리될 수 없다. 사상이 삶의 현장에서 분리되는 과정이 개념화이고 물신화다(강의 456). 매일 매일 마주하는 일상과 마주치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소에서 검증되고 구현되어야만 사상이랄 수가 있다. 쇠귀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과 삶은 하나로 증거하시는 일생이신 것이다. 나의 수형생활 20년은 “깨달음과 공부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쇠귀가 감옥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겨울 독방에 매일 두 시간씩 옥방을 비추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 때문이었다. ‘살아간’ 이유는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리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2~3년 후에 출소하는 단기수와 무기수의 징역살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전역을 앞둔 군인들이 세월을 보내듯 단기수는 달력에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 가며 출소할 날만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무기수는 출소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뭔가 살아갈 의미가 있어야 해요. 결과적으로 인생이란 게 그런 게 아닌가 해요. 삶 자체가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고, 뭔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깨달음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아마 무기수라는 어쩌면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이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열어 주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무기수에게 교도소는 순간순간을 버텨야 하는 공간이다. 버티는 일이 삶의 전부가 되는 셈이다. 매일매일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버티기가 어렵다.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는 깨달음 이후 쇠귀에게 감옥은 ‘대학’으로 변한다. 과거를 만나는 역사학 교실이고,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는 사회학 교실이자 사람 관계의 본질을 배우는 인간학 교실이었다. 감옥을 대학으로 바꾸는 이른 밀폐된 공간을 무한히 열리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부단한 성찰과 자기 부정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수형 생활 20년 가운데 ······ 이 5년간의 독방 시절에 열중한 것 중의 하나가 명상이었다. 구속, 취조, 재판, 언도 등 불안과 초조로 점철된 나날을 거치는 동안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심신을 다시 조각 모음 하듯 정리하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명상이 가져다줄 지극히 명징(明澄)한 정신의 영역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상이 그러한 정신 영역으로 인도해 주지는 않았다. 무념무상의 어떤 지점에서는 우주의 정보 체계와 소통하는 극적 체험도 가능하다는 매력적 이론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무념무상의 단계에서부터 실패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쇠귀가 독방에서 처음 시도한 것은 명상이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노장이나 불가에서 말하는 무념무상이나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평전, 227-228쪽). 명상을 통해서 나는 나의 삶의 공간에서 내가 겪은 사람과 일의 집합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삶과 변화는 대인 관계나 모든 관계에서 발현된다. 우리의 깨달음은 결국 각자의 삶과 각자의 일 속에서 길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나마도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결연함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깨달음은 오늘의 깨달음 위에 다시 내일의 깨달음을 쌓아 감으로써 깨달음 그 자체를 부단히 높여 나가는 과정의 총체일 뿐이리라 믿습니다.
인간이 왜 살아 나아가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그 어떤 삶의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살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빅터 프랭클린의 ‘로고테라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처절한 삶에 기초한 것처럼, 쇠귀 신영복 선생도 오랜 감옥 생활의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인간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아 나아갔다.
예수님이 사랑의 십자가에서 한없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영혼을 내어 맡겼던 믿음, 사랑, 희망의 덕행을 실천하며 증거하셨던 것처럼, 선생은 민족 분단 원죄와 본죄를 지고 갔다. 쇠귀 선생에게 평생 감옥은 마치 수도자와 같은 삶이었고, 오랜 수행의 끝에서 자기완성의 길을 열고 더불어 숲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27년 감옥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성공회 대학 중심으로 선생으로 제자들과 더불어 숲을 만들어 갔다. 이를 가능케 한 힘은, 쇠귀의 강한 의지과 멈추지 않는 사고의 힘, 그리고 끝까지 인간을 사랑하는 애덕의 실천에 있다고 본다.
선생의 삶을 요동치게 한 것은 통일혁명당 사건(1968년)이다. 이 사건은 물론 조작되었고 과장된 소설과 같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이 조작된 사건과 연결되어 혁명가로 만들어졌다.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혁명도 조작한다. 권력자가 쇠귀 선생을 범법자로 만들었으나, 선생은 감옥에서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아갔다.
쇠귀는 <담론>에서 자신의 관계론이라는 일반적 개념으로 존재론과 대비해왔습니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입니다. 정체성은 본질에 있어서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being)입니다. 관계의 조직은 존재를 생성으로 탄생시키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모든 관계는 끊임없이 조직되고 생성된다. 그 관계는 다시 변화하고 탈주하는 지속적 생성과 생기(生氣)의 장이다. 고정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체성이 형성되고 변화하며 재구성된다고 보는 점에서 존재론적 패러다임과 대비된다. 쇠귀는 서구 중심의 사유 체계를 반성하기 위해 동양 고전을 탐독하면서 관계론 패러다임을 고민한다. 존재론을 근간으로 하는 서구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을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근원적 한계를 갖는다. 감옥에서의 만남과 성찰을 통해 쇠귀는 세계가 개별적 존재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관계망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서구 근대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론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불교와 유교, 노장을 관통하는 관계적 사유에서 대안을 찾는다. 동시에 쇠귀의 관계론은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와 실천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회 구성의 원리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란 사회의 일반적 부문에 있어서의 인간관계가 일회적인 화폐 관계로 획일화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일회적 화폐 관계가 전면화되고 있는 인간관계는 사실상 인간관계가 황폐화된 상태이며, 인간관계가 소멸된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람이 타자화되어 있는 상태이며 ‘불인인지심’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지요.
쇠귀에게 사회란 함께 노동하며 더불어 사는 사람의 무리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함께 만들어 낸 생산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 사회의 존재 ‘이유’다. “생산과 분배는 사회관계의 실체이며, 구체적으로는 인간관계의 토대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개인, 집단, 국가 등 개별적 존재가 배타적으로 자기를 강화하고 강요하는 사회 구성 원리다. 동일성의 논리를 모든 다른 존재에게 강제한다. 제국주의 침략과 폭력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필연적 귀결이다. 쇠귀의 관계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 구성 원리이고, 대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실천 담론이다. 인간의 해방은 한 개인이 존재의 한계를 자각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마찬가지로 사회 구조의 변혁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개인과 사회 양자가 공히 변화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 쇠귀는 관계론을 통해 각 개인의 실존적 자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의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쇠귀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 4·19가 노독재자의 실정에 의해 유발된 것으로 소박하게 생각했지만 4·19 이후 5·16까지의 시기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통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구조적으로 인식해 갔고, 따라서 이 같은 사회는 원천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을 이론적으로 규명해야 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고요. 휴전 이후 초토화된 대학에서 저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는 4·19를 통해 위대한 각성을 하게됩니다.
쇠귀는 5·16군사정변을 목도하며 남한의 독재 정권이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문제의 핵심임을 깨닫고 비판적 사회과학 공부에 매진한다. 또한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도 허용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식민성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전통 사상이나 동양 사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사랑만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 진리만이 감옥 수감생활에서 자신을 깨어있게 할 수 있었다. 이성적 동물이기에 생각하며 나무같이 그 자리에서 서서 숲으로 가는 생각이 그를 살게 했다.
쇠귀는 감옥에서 책이나 이론보다 사람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에는 ‘가슴에 와 닿는 절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삶 속에서 역사와 사회의 실상이 고루 담기기는 어렵다. 드문 경우기는 하지만 예외도 있다. 루쉰은 중국 근대사의 한복판을 용감하게 걸어간다. 루쉰의 삶 속에는 그가 산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쇠귀는 『루쉰전』을 번역하면서 그 험난한 상황 속에서 루쉰이 평생 견결한 자세를 고수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을지 궁금했다. 그의 삶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의지는 다름 아닌 그의 양심의 응결체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양심은 이웃에 대한 관심이며 애정이다. 루쉰에게 이것은 인간을 ‘더부살이’로 이해한 것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흙과 더불어 살고 이웃과 더불어 살고 조국과 민중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루쉰이 지켜 낸 양심의 내용이었다. 루쉰의 초인 같은 업적도 이 양심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으며, 루쉰의 문학적 천재성도 이 양심의 승화였으며, 불굴의 전투성도 이러한 양심의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심은 이처럼 루쉰의 모든 고뇌와 달성(達成)의 원천이었다. 쇠귀는 일찍이 감옥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와 역사 그리고 모든 인식과 실천 과정에서 자칫 경시되기 쉬운 것이 양심이고, 그 양심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루쉰의 삶을 통해 새삼 떠올린다.
<신영복 평전>을 읽으면서 우리 한 민족 분단의 한 세기에 살아있는 양심, 생각하는 나무로서 우리 자주 민족 통일의 더불어 숲으로 가신 쇠귀 신영복 선생의 삶도 삶이지만, 삶의 마지막까지 선생의 유머 감각이 인상에 남는다.
오랜 감옥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세인 마비가 다리 쪽으로부터 위로 올라오고 있어요, 이제 가슴까지 왔네, 얼마나 다행이야, 위에서부터 내려오지 않은 게.
생각할 수 있는 나무는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는 그분의 마지막 메아리 여운이··· 더불어 함께 살아 나아가는 나무숲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인간공동체의 성체성사이다. 그 숲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성사에 자신의 일생을 다 바치신 소귀의 사랑이 영원히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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