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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이 자리, 이 순간에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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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 Opportuno, 프란체스코 살비아티(1543-1545년)의 프레스코화(피렌체, 팔라초 베키오의 살라 델 우디엔자에 전시된 카이로스​, “나의 앞머리가 풍성한 것은 나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도 있지만, 나를 발견한 순간에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나의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간 후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빠르게 사라지기 위해서다. 내가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내가 앞에 있을 때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같이 결단을 내리라는 의미다. 나의 이름은 ‘기회Opportunity’다.”

이 세상에서 지금, 당장, 여기, 이 자리, 이 순간에 하느님 나라를 살려고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라고 간곡히 말씀하신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늘 ‘그때’(in illo tempore)란 말로 시작한다. 그때는 바로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기 시작하는 은총의 때이다.

     

안셀름 그륀은 인간의 영성생활을 마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들에 비유한다. 연은 연줄에 따라 바람에 올랐다가 내가 잡아당기면 마치 춤추듯 움직인다. 인생이 그렇다. 바람은 하느님의 뜻, 성령의 바람에 대해 내 뜻대로 당겨 나를 마치 춤추듯 만든다. 연같이 오르락내리락 춤추는 인생이다.

     

지인이 한해를 다 보내고 새해를 보내는 좋은 인연과의 생에 대한 새해 메시지를 보내왔다. 함께 나누며 공유한다. 생명줄 같은 연줄이 끊어지고 그 쓸모를 다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인간은 사라져버리고 더 이상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인연 따라 흘러간 세월이었고, 인연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흐르므로 과거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후회할 것도 반성할 것도 없습니다. 미래는 수억만 가지 인연의 흐름이므로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미래 일은 ‘모른다’가 정답이므로 걱정하거나 불안해 할 것이 없습니다. 과거가 죽고 미래도 죽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이것’ ‘지금 여기’만이 내 삶의 현장이고 그 외에는 다 허망한 것입니다. 문제는 단 하나 내 생각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입니다. 과거의 좋았던 것만 생각다 치매 걸릴 확률이 높고 극단적 선택한 사례도 통계상 많습니다. 알 길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과 초조가 짓누릅니다. 그러니 지금 오늘 바로 이 시간을 뜻깊게 즐겨야 합니다. 여기서 ‘뜻깊게’는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처신해야 하는가를 자기에게 물어보는 자기정체성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살아나가지 않는 자는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 헛것을 따라다니다가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이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뜬구름 바람처럼 생겼다가 사라져버리고 불고 싶은 대로 가버린다. 사랑하는 너, 내 마음 수면에 떨어진 말씀 한마디의 파장은 어떠했던가? 돌아보니 헛것에 홀려 떠돌다, 떠돌다 넘어져 돌아보니 아이고머니나 천지 사방이 여기였구나, 평생이 이 순간이었군. 오늘을 붙들어라. 되도록 내일에 의지하지 말아라. 그날그날이 일년 중에서 최선의 날이다. 내일은 단지 희망일 뿐이다. 이뤄지지 않은 그 희망에 의지하지 말라. 다만 오늘 지금 당장 여기 있는 것들만 붙들어라(램프 왈도 에머슨, 미국사상가).

     

지금 당장 여기 이 자리 이 순간에 잡았다는 사랑의 인연을 묵상해 본다. 또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서 자신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실감 나는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을 한국에 주재했다는 외국 기자가 자기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확인한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3가지에 빠져 (미쳐) 있고, 한 가지는 없고, 한 가지만 있는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그럼 3광(狂)은 무엇인가?

     

1. 첫째가 스마트폰에 빠져있다.

전철을 보면 남녀노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두족(低頭族)들이다. 모두 머리를 숙이고 스마트폰에 빠져있다. 또 스마트폰 내용들은 대부분 카톡, 게임이나 먹방, 노래 심지어 고스톱에 빠져있는 경우도 많다. 전철에서 스마트폰 대신에 책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유럽 사람들은 보통 책을 읽는다. 심지어 공원엘 가면 가족들이 산책 중에 아빠, 엄마는 각자 스마트폰에 빠져있고, 아이들은 지들끼리 놀고, 가다가 화단에 넘어지는 장면도 자주 목격된다. 가족의 공원 산책은 가족 간의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식탁에서도 전부 제각각 스마트폰과 대화한다. 가족 간의 대화는 거의 없다.

SNS의 사용은 4차 산업혁명이나 스마트폰 수익과는 별 관계가 없다. 스마트폰 시장 수익은 삼성전자와 애플을 비교하면 16:84로 애플이 압도적으로 많이 가져간다.

     

2. 두 번째는 공짜 돈에 빠져있는 사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 돈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짜 돈이라 해도 그 돈의 출처라도 알고 받아 써야 하는것 아닌가?

정부가 코로나 재난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주는 공짜 돈은 사실 선거 표장사 돈 아닌가?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한국 사람들은 출처를 알고는 있는가? 주는 사람들 자기 돈인가? 한국 사람들은 공짜를 너무 좋아한다.

2016년 6월 스위스 국민들은 정부가 공짜돈 300만원 정도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76.9%로 부결시켰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멍청한 국민들인가?

너도나도 전부 공짜 돈을 받아 챙기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공짜 돈의 전형은 뇌물이다.

한국의 부정과 부패는 자기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미 한국인들의 문화이자 DNA가 된것 같아서 안타까움이 크다. 또 요즘은 돈에 광분한 젊은이들의 ‘영끌 투자’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3. 세 번째는 트로트에 빠져있다.

어느 날 갑자기 트로트는 한국의 대부분 방송국에서 단골 프로가 되었다. TV만 틀면 전부 트로트다. 많은 가수들이 중복 출연하고, 노래도 중복되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너무도 식상하지 않는가? 한국의 문화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국인들의 DNA에 ‘흥과 기’ 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음주 가무를 즐긴다. 인구 비례로 노래방 수는 세계 1위다. 퇴근 후에 집으로 바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주말이나 휴일에 즐겨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시도 때도 없는 트롯트와 음주 가무는 정신을 황폐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로마가 망할 때 포도주와 공짜빵 그리고 서커스에 취해 망했다고 한다. 그 전철을 밟는 것인가? 지금 한국이 망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1무(無)는 무엇인가?

그것은 안타까운 말이지만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무사고(無思考)다. 한국인들은 생각하길 싫어한다. 그러니 진지함도 별로 없다. 유머 중에 이런 게 있다. “일본사람들은 생각하고 난 뒤 뛰고, 중국인들은 일단 뛰고 난 뒤 생각하고, 미국인들은 뛰면서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뛰다가 잊어버린다”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자기가 왜 뛰는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뛴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나면 보통 “요즘 어떻게 지내나?” 하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지 뭐”라고 답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니 나라가 이런가?

나라가 거덜 나고, 안전사고가 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인가? 코로나를 빙자해서 공짜 재난 지원금을 주면 그냥 공짜라 좋아 돈 받고, 부자 만들어 준다는 정권을 아무 생각 없이 지지하고 폭등하는 물가에, 고금리에, 고환율 등 경제난에 전부 징징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무사고의 결과는 안전사고 다발의 불명예다. 한국에서는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대형 안전사고가 계속 반복해서 일어난다. 화재, 선박 침몰, 건물 붕괴,다리 붕괴, 길거리 압사 사고가 단적인 예다. 왜 이런 사고가 다반사로 반복해 일어나는가? 그것은 아무 생각없이 대충 일하는 것이 한국인의 습관이자 문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전 법규나 안전수칙은 안중에도 없는 무사고(無思考)가 원인이다.

     

마지막 1유(有)는 무엇인가?

그것은 ‘말은 한다’라는 것이다. 전부 말로만 하지 행동이나 실행은 거의 없다. 화물과적의 대형 선박사고, 그러나 여전히 과적사고는 일어나고 있다. 개선의 실행이 없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모두 말은 번지르르하게 많지만 전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한국인을 ‘나토(NATO)족’이라 했을까? 나토족은 ‘No Action Talking Only’, 즉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한다”라는 뜻이다. 특히 인기인이란 자들, 사이비 언론인과 종교인, 사기꾼 같은 조작 교수란 것들이 배설한 더러운 말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한국인의 모습이지만 자신들은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계 경제 11위의 대한민국이 지금 쇠락하고 있다. 안타깝다.

평화가 흔들려지고 경제가 내려앉고 사회가 온갖 부조리로 썩어 가고, 언론과 법이 죽고, 사법부도 전부 썩어 고름이 나는 지경이고, 특정 직업 일당들이 나라의 중요한 포스트와 권력을 온통 독점하고 통제와 감시의 나라로 바꾸고 있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각도 생각도 없는 한국인들인가 싶어 참으로 안타깝다. 역시 생각 없는 국민들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알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국민, 지식인, 정치인, 언론인, 젊은 청년들, 학생들, 공직자, 학자들이 있기는 한가?

     

3광(狂) 1무(無) 1유(有)의 사람들이 넘쳐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역사를 그렇게 좋아하는 한국인들이지만 정작 자기 나라에 대한 투철한 역사의식이 없어 보여 안타깝다. 나라는 국민들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미 정치에서 기대할 것이 없는 나라다. 그렇다면 국민들이라도 제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 한국 근무를 마치며 -

     

도대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한국 사람에게 사고가 가능한 이성적 동물이라는 정의가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우리 각자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 생각에서조차 자신의 처한 현실의 변화를 선택할 수 없는데, 그 어떤 현실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사고나 정치적 뉴스들은 진정 생각이 있는 자들의 소행인가? 정신적 문제가 있는 자 아니면, 어떻게 그런 상식과 공정과 진리에 역행하는 일을 전혀 생각 없이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이러고도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하겠는가? 한국 사람들에게 내일은 없다는 것은 한국 젊은 층에서 내일을 위한 저축생활이 없다는 데에서도 볼 수 있다. 수중의 돈으로 다만 오늘만 살면 그만이다. 또한 나이 많은 층도 자기 후손들, 다음 세대의 내일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미래도 기약할 수 없고, 오늘 지금 당장 여기서도 감당할 수 없는 문제, 그대로 둔다. 그저 짐이다. 그래서 미래는 없이 오늘만 살아가고 있다. 그 어느 세대보다도 부모님의 뜻대로 되는 일 없는 오늘의 젊은 세대들 같이 여겨진다.

     

대한민국인은 저마다 자기 발등 위에 떨어진 불똥도 끄기에 바쁘고, 다른 이들과 공동체의 일은 전혀 신경 쓰지도 못하는 남의 일로 여기는 나 자신밖에 없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고질병을 앓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나의 의견과 견해가 다르면 제거해야 할 적대 카르텔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이 바로 금년 새해 초에 나타난 살생정치, 곧 야당 대표 살해미수사건이다. 상생정치로도 민생을 살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기도 어려운 마당에, 불난 집에 기름 붓듯 살생정치만 일삼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를 쥔 정치인들은 말로만 다 해결할 뿐이다. 자신만을 위한 살생정치만 생각하지, 상생정치는 아예 생각조차도 전혀 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 모든 문제와 해결의 실마리는 오는 총선에서 우리 국민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전혀 변화할 생각이 없다면, 지난 윤석열 정권이 보여준 그대로 아무 변화 없이 그렇게 추락할 수도 있다. 국민과 싸워 이긴 정권은 없다. 오는 총선에서 살생정치 정권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살생의 역사적 공범자가될 것이다.

     

대통령은 정치력도 있어야 하지만, 국민 전체를 통치하는 통치자로서 능력도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난맥상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대통령 자신이 특정한 정파적 이익을 ‘정의’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게 크다고 본다. 검찰 정권으로 상징되는 ‘용산 카르텔’을 꾸려 나라를 위험하게 만들면서도, 툭하면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문화를 옹호하고, ‘카르텔 척결’을 주장하는 정신세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어느 한 당파적 이해를 관철하는 자리가 아니다. 더욱이 검찰조직의 이익만을 위한 조폭같은 시스템을 운영하면 검찰독재 정권 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 국민 전체 이익을 위한 통치자의 자리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력을 갖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앞세운다면 당연히 우리 는 그의 권력을 내려놓게 만들어야 한다. 국민 주권을 다시 찾아오는 다음 4월 10일 총선이 그 해결의 실마리이다. 결자해지라고 했나. 우리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대한민국 정국 난맥을 선택한 것이니, 이제 그 연장인 오는 총선에서 잃어 버린 대한민국의 국민주권을 다시 찾아올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리하여 지난 이 땅에서 역사의 죄인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새로운 100년으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새역사의 주인공이 되십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여기 이 자리 이 순간부터 회개하여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기 시작해야 한다. 회개 생활 없이는 그 어떤 변화도, 이 생지옥같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오는 총선은 전혀 변화 없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날이다. 지옥이란 여기에서는 전혀 변화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생지옥 같은 나라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회개하여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는 선택을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지금, 당장, 여기, 이 자리, 이 순간, 나의 선택에 따라 지난 3년 생지옥 같은 삶이 계속될 수도 있고, 더욱 나은 나의 미래 삶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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