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멀고 귀먹은 자들의 국가 -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 후에
- didimausi
- 2024년 4월 19일
- 6분 분량
진도 팽목항 세월호 참사 십 주기 기억미사를 다녀왔다. 다음날 매일 아침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는 지인이 이산하 시인의 글(‘유언’)을 보내왔다. 묵상을 하게 되는 글이었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우리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ㅡ故 박지영 승무원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
ㅡ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
“내 구명조끼 니가 입어.”
ㅡ故 정차웅 단원고 학생
“지금 빨리 아이들 구하러 가야 되니
길게 통화 못해. 끊어.”
ㅡ 故 양대홍 사무차장
“걱정하지 마. 너네들 먼저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ㅡ故 최혜정 단원고 교사
시인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시 청탁을 받았지만 쓰지 못했다면서, “이 이상의 시를 어떻게 쓰겠는가”라고 했다. 그렇다. 한 시인이 제자들과 친구를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 이들의 유언을 들은 이상, 어떤 시로 그들의 사랑을 쓰고 적어 남길 수 있을까. 또 다른 작가의 글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에밀레종의 실제 타종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소리는 매우 슬펐으나 어떤 슬픔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나긴 여운을 간직한 것이었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그날, 가라앉는 배에서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던 사람, 정작 배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할 선장은 탈출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참사 유가족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의 주례와 강론을 맡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김인국 신부님은 지난 10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활동과 그 결과를 정리해 주었다. 세월호 유가족은 박근혜와 역대 독재자들, 검찰독재 아래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에서 국민을 살리기 위한 긴급구조 최일선에서 자신의 가정과 자신의 온몸을 다 던져 투사로 나섰다. 그리고 현실 결과가 이번 410총선 투표로 나타났다. <‘이대로’ 3년은 너무 막막하다>라는 칼럼을 읽어 본다.
돌이켜보면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만큼 정권심판 민심을 표징하는 것도 없다. 집권 2년도 되기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정권 조기 종식’ 구호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 만큼 심판 민심은 매서웠다. 여당이 108석으로, 간신히 탄핵 저지선을 지켰지만 내용상으론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임’에 가깝다. 내각제 같으면 총리가 물러나고 정권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권은 남은 임기 3년도 극한 여소야대 우산 아래 놓이게 됐다. 야당 협조나 양해 없이는 입법, 예산, 인사, 법제화가 필요한 정책 등에서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윤 대통령은 일찍이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식물 대통령’이 실체로 다가왔다.
총선 결과는 국정 기조의 전면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응답했다. 응당 그리하여야 하나, 소환되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 뒤 “저와 내각이 반성하겠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쇄신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그때 제대로 반성하고 국정을 쇄신했다면 총선 결과가 이렇지는 않았을 터이다.
국정 쇄신,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오만·독선·불통의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쇄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양권모, 경향신문 2024.4.15.).
선거를 마친 지인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국민이 옳다’라고 말한 그 말이 진짜 맞습니다. 제대로 선택한 국민들의 뜻이 맞았기에 폭삭 망했습니다.” 국민이 무지몽매했으면,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반국가 세력으로 몰고, 노동자와 농어민은 더 좌절하고, 약소해진 국격은 더 강대국의 눈치만 봐야 하고, 남북의 화해나 통일의 길은 더 요원해질 뻔했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의 선택은 새 희망의 싹을 틔웠다. 깨어있는 국민, 가만히 있지 않은 국민의 올곧은 선택의 승리를 했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부족했다는 말 만하고 민생을 더 챙기겠다는 말뿐이다.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하는 대책이나 방법은 없다. 아직 정신이 덜 깼는지, 말 같지 않은 말만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며 목이 터져라 외쳤던 광화문 촛불광장 승리의 메아리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총선 결과 담화는 항상 국민은 옳다는 원칙적인 말, 고장 난 레코드판 도는 소리만 낸다. 국정운영에 최선을 다했으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지 못했다. 앞으로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만 앞선다. 국민과 소통하라는 총선 결과의 의미를 읽지 못한다. 정책적 대안은 없다. 답답하다.
국가 시스템은 이태원 참사 때도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지되었다.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국가는 없었다. 언론보도를 보면 총선 이후, 민심을 듣고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민정수석을 다시 만들려는 듯 보인다. 대통령 본인의 레임덕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에게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본인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식의 대응이다. 일방적 국정운영 선언에 불과하다. 정말 ‘이대로 3년은 너무 막막하다’라는 말이 너무나 실감이 난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호는 가라앉을 수도 있다. 이 배에 타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위태롭다. 대한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자들은 변하지 않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세월호 이후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으라 한다. 정부측 그 어디에도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 민생을 책임지고 구원의 손길을 내어주는 자는 찾아볼 수 없다.
단기에 윤 대통령의 변화와 국정 쇄신 의지를 검증할 수 있는 다섯 개의 시험대가 앞에 있다. 인적 쇄신, 협치, 소통, ‘해병대 채 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 문제다(양권모, 앞의 칼럼).
대한민국 국민 하나하나가 살아날 수 있는 국민생명, 안전보장 방법과 수단을 찾지 않는다면 대한민국호는 정말 침몰할 것이다. 이미 세월호, 이태원, 오송지하도 참사가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의 국정쇄신과 변화의 진정성을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본인은 잘못 없고, 아랫사람들이 잘못했고, 또 국민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밀리기 싫어하고 고집스러운 윤 대통령이 총선 민의와는 반대로, 반동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어차피 여야 의석 분포는 21대 국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남은 3년의 국정도 지난 2년과 같이 독단적으로 운영하려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다섯 가지 시험지에 적힐 응답이 달라진다. 인적 쇄신은 감동 없는 보여주기에 그치고, 국무총리 인선은 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협치는 외면하고, 일방 불통은 개선하지 않고,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로 막을 것이다.
총선 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이고, ‘이름뿐인 대통령’으로 전락을 자초하는 길이다. 윤 대통령이 끝내 변화를 거부하면, ‘이대로’ 3년은 너무 길고 막막하다(앞의 칼럼).
배는 침몰하고 있는데, 그저 가만히 앉으라는 게 말이 되는가. 무책이 상책일 수 없다. 각자도생, 우리 국민 자신들이라도 각자 변하고 살길을 찾아 나서야만 구출될 수 있다. 국정운영에 우리 자신의 생존을 맡길 수는 없어 보인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가만가만 가만히 거기 있으라고?
어두움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광화문 촛불시민 혁명은 가만히 있지 않은 민심이 보여준 혜성과도 같은 별빛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더는 자신들이 당한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나와서는 안 된다며 10년을 싸웠다. 국가부재의 시절, 국민 주권을 다시 찾는 최일선에 선 것이다. 그렇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같이 이제 계속 움직이며 주권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우리 각자임을 확인해야, 우리의 살길이 열린다.
국민은 이대로는 남은 3년도 지난 2년의 연속이라며 너무 막막하고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살아남을 길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다섯 가지 국정운영 방향전환인 인사개편과 지금까지 생각과 태도 본인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 한, 지난 2년 국정운영에서 한 발짝도 진전도 변화도 기대도 난망이다. 혹시나가 역시나, 일방적 국정운영을 끝까지 밀고 가는 마이웨이만 남았다. 우리의 성서는 회개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고, 회개 없는 변화는 위선적인 이중생활이다. 그것은 바리사이 생활방식으로, 꼭 지금 정권의 국정운영이 그렇다. 그들은 회개도 없고, 변화할 수 없는 길로만 간다. 대통령은 회개 없이 마이웨이를 가지만, 대통령실 사람들은 입도 뻥끗 못 하고 마치 왕궁의 내시들처럼 왕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왜 대통령이 할 말을 자기 비서들을 통해서 전하는 게 또 말이 되는가. 지난 2년처럼 야당과 대화하지 않고 협치하지 않으면, 그 이상으로 남은 3년은 지난 2년같은 치킨게임으로 다시 살생정치가 되고 정치는 실종되고 말 것이다.
이번 총선은 분노가 폭발한 민심의 경고였는데, ‘국정방향은 옳았다’는 대통령은,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까지 국민이 체감하지 못했다. 죄송하다. 그대로 간다고 한다. ‘윤석열과 지는 벚꽃이 닮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는 이제 떨어지는 벚꽃처럼 온 국민에게 짓밟힐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엔 두 절대권력이 있다. 7000여 고위직을 임명해 국정을 총괄하고 형사소추도 불가한 ‘대통령’과 그를 탄핵하고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개헌도 할 수 있는 ‘국회 200석’이다. 총선은 그 대통령의 힘을 빼고, 야권엔 200석까지 8석을 채워주지 않았다. 서로에게 부족한 2%는 최후통첩이다. 패장 대통령은 마지막 기회이고, 국회 리더 이재명은 경세의 전략·정책·지혜를 구할 시간이다. 대통령은 비상구가 있을까. 이재명은 ‘새 이재명’으로 거듭날까. 앞으로 1~2년, 새 국회 전반기(2024~2026년)에 판가름난다. … 선거는 세상을 당겼다 놓는다. 그새 벚꽃이 졌다. 2년 만에 권력 누수된 대통령과 화려하고 짧게 폈다 지는 벚꽃은 닮았다. 대통령은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이기수, 윤석열과 지는 벚꽃이 닮았다, 경향 2024.4.16.).
벚꽃은 내년 춘삼월에 다시 피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임기라도 다시 피는 꽃다운 시절이 올까. 모든 것은 1~2년 사이에 판가름 날 것이다. 시민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시간은 짧다. 이번 총선 심판같이 심판은 국민이 한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이형승 시인의 시 ‘사월’이 생각난다.
제가 차린 생일상처럼 빤하게 와서
주인 없는 제상처럼 4월은 간다.
유괴나 실종에 비하면
사고사나 병사는 은총이라는 말은
웃지도 못할 비린 말씀이지만
사는 일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되지 못하는 사람은
바다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고
돌아오지 않았기에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이고
떠나보낼 수 없기에 함께 침몰하는 사람이다.
피지도 못한 꽃이 떨어지면서 4월이 간다.
사람은 있는데, 인생이 없는 4월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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