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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최종 수정일: 2023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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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벤저민) 웨스트,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리라(Omnia Vincit Amor, 1809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다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49-50).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불이 사랑의 불이 이미 댕겨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씀하신다. 제자들을 파견하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의 불인 성령이 그들에게 활활 타기를 밤새워 간구하시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덧붙여 원시인들이 마른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고 다른 나뭇가지를 넣고 양손 바닥 불이 붙을 때까지 열심히 비벼대는 모습, 그렇게 간절히 불을 타오르리기를 비는 모습도 연상하면서 이 성경 말씀을 묵상한다. 예수님은 이제 사람들이 성령의 세례로 거듭나서 다시 사랑의 불로 활활 타오르시기를 바라신다. 그 하느님 사랑의 불씨인 성령의 불씨가 우리 마음을 환히 비추도록 간청하면서 성령찬미가로 기도 바친다.

오소서! 사랑의 성령이요, 창조주시여. 우리 마음속에서 사랑의 불타올라 사랑의 불씨로 되살아나게 하소서. 성령 사랑의 불씨요, 생명의 씨앗이요, 성령의 불씨인 사랑의 불씨여! 꺼져가는 우리 마음의 사랑의 불을 당겨주시어,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을 놓으러 오신 그 사람에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낌없이 남김없이 사랑의 불씨로 다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생각하는 동화작가 고 정채봉 선생의 철학동화 <내 가슴속 램프>를 나름대로 묵상해본다. 개울가 언덕 개똥벌레네 집이 있었다. 개똥벌레는 밤마다 님을 찾아서 훨훨 마실을 떠나는 이웃 나방들이 몹시 부러웠다. 어느 날 엄마 개똥벌레에게 고백하였다. “엄마 나도 저 나방처럼 남을 찾아가고 싶어요.” “아들아, 너 아직 때가 이르다.” “그러나 엄마 나는 내 몸이 뜨거운걸요. 누구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같아요.” “그럼 나와 함께 가보자.” 엄마 개똥벌레는 개똥벌레를 데리고 철길이 있는 방죽으로 갔다. 거기에는 열차의 불빛을 향해서 덤벼들다가 다친 나방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었다. 더러는 머리가 깨지고 날개가 부러진 나방들···. 그들을 앓으면서도 아쉬워하고 있었다. “유리창만 없었으면 님을 안을 수 있었을 텐데.” “엄마, 정말 그래요?” 개똥벌레의 물음에 엄마 개똥벌레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숲속에 있는 야영장이었다. 거기에는 모닥불에 덤벼들다가 타버린 나방들의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엄마 개똥벌레가 말했다. “이렇듯 맹목적인 사랑에 몸을 던져버려서야 쓰겠니?” 돌아오는 길에 개똥벌레가 엄마 개똥벌레에게 물었다. “엄마, 저런 풋사랑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은 어떻게 이룰 수가 있지요?” “커가면서 생각해 보려무나. 어떤 사랑이 가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인지를.” 이후로 개똥벌레는 통 말이 없었다. 어느 날 밤에 엄마 개똥벌레가 아들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아들은 하늘의 별을 우러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 개똥벌레는 아들의 마음을 알아챘다. “아들아, 그 사랑을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단다. 오래 참아야 하고, 교만하지 않아야 하고 ··· 그리고 앙심을 품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해야 한단다.”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개똥벌레는 뒤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아, 별을 향해 나는 그의 꽁무니에 별이 나타난 것이었다.

철학자 칸트의 묘비에는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라는 글이 써 있다고 한다. 나는 이를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별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그 사랑의 성령이 타오르는 것으로 이해한다. 내 마음속에서 사랑의 성령의 불씨가 타오르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의 욕망만 태우고, 결국에는 허무의 재만 남게 된다.

내 영혼이 성령의 불씨로 자신을 태우고, 그 성령, 사람의 불씨로 남을 태울 때만, 사랑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계속 되리라! 순간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은 이같이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로 타오르는 것이다. 첫눈에 반해버린 두 사람의 사랑의 떨림이 계속된다면, 처음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다짐했던 그 마음으로 직장 일을 계속한다면, 몸이 아파 외출을 못하고 방에만 있다가 병이 나아 상쾌한 바깥 공기를 맡으며 감사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나의 몸을 돌본다면 …. 누군가에게는 심장이 뛰고 숨 막히는 사랑의 순간이며, 누군가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불, 그 감동의 체험이 남에게도 전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순간에서 영원으로 향하는 사랑의 불씨를 간직할 수 있으련만.

사랑하다 포기하는 것은, 마치 노다지 금광을 사서 노다지를 깨다가 더 이상 금이 나오지 않는다며 방치하는 것과도 같다. 한 뼘만 더 파고 들어가면 노다지 금맥에서 금을 얻을 수 있는 데 말이다. 우리 인간 마음속에서도 노다지 같은 사랑의 맥을 사랑하다가 그만두고, 사랑을 포기하는 자에게서는 결코 성령의 불씨, 사랑의 불씨는 타오르지 않는다. 오늘 또 기도하면 다짐해본다. 성령, 사랑의 불씨를 댕겨와 불타오를 때까지 계속, 사랑의 마찰을 빌어 간구하며 끝장을 보고야 말리라는 그 사랑의 불씨, 그렇게 다시 피어오르리라.

홍 마티아 신부님의 성령강림대축일 강론을 묵상해 본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복음 말씀은 마태 5,13-16에 나오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는 당부 말씀과 함께요. 소금이 음식에 짠맛을 내려면 자기 자신이 완전히 없어져서 그 음식에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빛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본연의 역할을 하려면 다 없어질 때까지 자기 몸을 태워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죽이는, 그 녹여지고 태워지는 삶이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가 떠오르네요.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매일 따스한 밥과 국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네/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시인은 연탄 한 장을 바라보다가 “일단 제 몸에 불이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속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은 다 타고나서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그 누구에게도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던 삶을 살아왔구나”하고 부끄러워합니다. 남김없이 자신을 태우는 일의 두려움, 일의 끝에 맞닥뜨려야 하는 허무감, 이런 것들에 지레 겁을 내고 아무 실천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용기 없었던 삶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릅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가 하는 일이 결국 타고 남은 재처럼 쓸쓸한 결말로 내게 온다 할지라도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을 위해 몸을 활활 태우는 일,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일, 그 자체로서 삶은 의미 있는 것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허무한 한 덩이 재마저 산산이 으깨어져, 미끄러운 세상에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드는 일에 바치는 삶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안도현 시인은 또 다른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우리에게 돌직구처럼 질문을 던집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단 한 번 누구에게라도 뜨거운 사람이지 못했던 사람은 연탄재 하나라도 함부로 차지 말라는 이 물음은, 적어도 연탄재 하나보다는 더 뜨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애절한 호소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소금이 짠맛을 내지 못하면 버려질 거라고, 빛이 어둠을 비추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간절히 호소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 자신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묻습니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어느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랑의 불씨인 사람이었으면 네 사랑의 불씨는 그 사랑한 사람 안에서 계속 불당겨 꺼지지 않고 타오리라. 결코 재만 남길 수 없는 너의 사랑이 불씨로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은 진실로 하느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하느님 안에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요한 2,3-6).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이란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신 이 세상에 다른 사람 안에 불씨로 사랑의 불을 지르는 것이다. 사랑의 불씨로 그 사람 안에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 십자가 사랑인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이 세상 모든 사람 안에 사랑의 불씨를 당겨서 그 불이 이미 타올라서 꺼지지 않는 불씨로 항상 되살아서 부활하는 영원한 사랑으로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으냐? 이제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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