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묵상 성경말씀의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 살아 나아가기
- didimausi
- 2022년 8월 17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12월 13일

첫 번째 묵상
성경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 살아 나아가기
성경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 살아 나아간 본보기는 340년경 크로아티아 출신 예로니모 사제학자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불가타, 곧 라틴어로 옮긴 서방교회 4대 교부이셨다. 말년에 나자렛 가정이 있었던 곳에서 기거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살아 나아가신 예수님의 일생을 뒤따르려 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당대의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일생을 바쳤다.
어느 시인의 기도처럼 말이다.
사는 날이
내가 할 일이 어디 이 세상뿐이랴
저세상에서도 할 일이 있어
나는 날마다 꿈꾸기를 연습하나니
진실로 진실로 바라옵기는
사는 날같이 죽어서도
날마다 꿈꾸는 날이기를.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시기를, 깨어 있을 때나 꿈꾸거나 나자렛 예수님 같이 사는 꿈꾸기. 사제가 되기 위한 신학교 생활 8년 동안, 나 자신도 매일 복음 성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약 30분 정도 하고 나서 아침 미사로 하루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돌이켜보면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는 수덕 생활을 준비로 보인다.
사제가 된 후에 그대로 지속하지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은 묵상기도 생활을 지도해 주시던 신부님께서 시작 기도 때에 발음을 잘못하셔서 ‘분심 잡념’을 ‘분심 잡년’을 끊어버리고, 라고 하신 말씀이 귀에 더 쏙 들어와 오히려 더 분심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제생활 55년에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신학교 생활하는 동안 성서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 나아갔던 성 예로니모 사제같이 묵상과 기도 생활로서 대선배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쫓아가지 못한 것 같아, 그것이 가장 큰 죄 같고 후회가 막심하다. 사제로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도, 예수님처럼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한낱 예식 행위로만 미사성제를 거행한 것 같아 죄송스럽다.
“너희는 이 예식을 거행함으로써 나를 기억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주님께서 나를 세상과 일상에 파견하신 것이고, 그곳에서 당신처럼 살아가라는 말씀이었는데, 나는 그대로 살아내지 못했다. 나의 일생이 바닷가 모래밭에서 바닷물을 퍼 담는 아이같이, 사랑의 신비 앞에 가장 큰 죄인이다.
나의 일생의 사랑은 바닷가 모래구덩이에 바닷물을 퍼붓는 사랑의 바보. 사랑의 죄인이옵니다. 어느 시인 같이 말이다.
사랑의 신비
바닷가 모래밭에
한 아이 구덩이를 파서
바다를 담고 있네.
조개껍데기로 퍼 담고 있네.
거기서 뭐 하느냐 물으면
“이 구멍에 바닷물을 다 담으려고요.”
“그건 불가능하단다.” 일러주어도
아이는 계속해서 퍼 담고 있네.
어쩌면 좋습니까? 나의 사랑은 모래사장 속으로 사라지기만 하는 식이니, 제대로 사랑하지 않은 현실 결과란 말입니까?
바다보다도 더 넓은 그 한계 없는 사랑을 바닷가 모래밭에 바다를 담는 식으로만 살아온 현실 결과로밖에 남은 것이 없는 나의 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어느 시인의 ‘엘 그레코의 베드로의 눈물’이 떠오른다.
손목에 천국의 열쇠를 걸어놓고
하늘을 우러르는 네 눈을 볼 때마다
일생을 통회하는 네 눈을 볼 때마다
눈물 그렁그렁한 네 눈을 볼 때마다
너무 울어 텅 빈 네 눈을 볼 때마다
나는 비로소 나를 본다.
사랑의 배신조차도 모르는 나 자신은 베드로같이 사랑의 사도로서 사랑의 십자가에 거꾸로나 매달리는 은총을 간구하는 저 자신을 보게 된다.
사랑의 배신자인 나 자신을 위해서, 어느 시인의 ‘화살시편 18- 아니, 아멘’ 같이 간구하는 염치도 없는 나 자신을 본다.
화살시편 18
-아니, 아멘
한 번만 더
못 박히소서
내 잘못 내가 모르오니
주님,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못 박히소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오니
내 대신 못 박히소서
못 박히소서
못 박히소서
아니, 아멘 사도 베드로같이 당신 사랑의 십자가에 나 자신을 거꾸로나 못 박히게 하소서.
사랑의 뿌리 하나 내 마음속 깊이 심어주시고 사랑의 십자가 나무에 못 박히게 하소서.
고인이 되신 어느 시인의 ‘눈물’이란 시 같이 말이다.
눈물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고
아는 사람들 앞에서
세 번씩이나 배반한 뒤에
열리는 새벽
괴로움에 가슴을 치며
사흘 밤 사흘 낮을
눈물이 빠져나간 눈에 고이는 눈물
배반의 날은 새고
몸도 눈도 숨길 데가 없어
뒤돌아 떠나려 하지만
배반한 자일지라도
세 번 아니라 일곱 번을
일곱 번 아니라
일흔 번을 용서하라는
님의 말씀에 마음 열리고
눈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는…
그런 베드로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는 저 자신의 회개 사랑의 눈을 뜨게 하소서!
하늘이 열리게 하소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고 김형영의 시)
반 고비 나그넷길에
저문 날이여
허름한 식탁에 산처럼 앉아
이는 내 몸이라고 빵을 떼어 주실 때
이는 내 피라고 술을 따라 주실 때
그 무릎에 엎드려
황소울음을 울던 사람,
그 사람 혹 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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