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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강

머리말 -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이 소책자는 한국 순교자들의 영성을 다루고 있다. 2014년 8월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 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앞두고 저자와 몇몇 원로 신부님들은 한국 순교자의 영성을 우리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서울대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님과 교황방한준비위원 장인 강우일 주교님에게 이 책자를 발간하고자 한다는 서한을 올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시일이 너무 촉박하여 결국 이제야 책이 나오게 되었다.

조선 말기는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다. 이 시기에는 임금의 명령이 곧 법령이기도 했는데, 이런 때에 우리 순교자들은 임금이 아닌 하느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그들은 단지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태웠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믿는 마음을 굽히지 않고, 당시 제도에 도전하여 억압에 굴하지 않았기에 순교한 것이다. 초대 교회의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한국 교회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순교자들의 순교 영성에서 신앙의 싹이 텄다.

예수회와 도미니코회, 작은형제회는 17세기 중엽 중국에서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에 관한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 예수회는 제사를 동양 문화권의 관습이자 미풍양속으로 보았다. 그래서 제 사를 드리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도미니코회는 조상 제사를 미신 행위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두 가지 입장 중 교황청은 도미니코 회의 입장에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조선 교회는 이런 교황청의 뜻에 순종했다.

하지만 조선 교회가 제사 수용 금지를 따른 것은 조선에서 천주교 대박해가 시작되는 직접적 인 계기가 되었다. 박해는 계속되었고, 연이은 박 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바쳐야 했다.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아 순교자의 수가 1만 명을 헤아렸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은 서슴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제사를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걸었는지에 대해 신학적으로 재조명해 보려 한다.

그러나 이런 재조명 과정에서, 우리는 그분들의 신앙이 오늘날 우리가 쉽사리 범접하기 어려 울 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 한국 순교자들은 이 세상의 생명에서 영원 한 생명으로 가는 순례의 여정, 곧 파스카 영성 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 백정 출신이었던 황일광 시몬 복자는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 말처럼 우리 순교자들은 신앙으로 인해 지상에서부터 천국을 맛보았고, 그것을 천상의 영원한 삶으로 이어 나갔다. 아무리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며, 신분이 낮아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맛, 복음의 절대 가 치를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분들이 지닌 순교 영성의 뿌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공동체를 위한 일인 지 아닌지 생각해 보지도 않으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산다. 선조 순교자들이 이런 우리를 보신다면 그러한 삶은 결코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고 개탄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가난할지라도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에 뜻을 두고 살았던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따르라고 권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신앙의 정체성을 점점 잃고 있다. 이러한 때, 정체성을 되살리는 길은 우리 자신의 원천, 우리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우리 신앙의 뿌리인 선조 순교자들의 순교 영성에서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분들의 순교 영성에서 교회의 활력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소책자가 본당 사목 현장에서 널리 쓰이길 바란다. 그리고 아직까지 한국 순교 영성과 관련하여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 많은데,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어 더욱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 소책자가 출간되기까지 기쁨과희망 사목연구소의 오민환 연구 실장이 도움을 많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가톨리출판사 사장인 홍성학 아우구스티노 신부님과 편집국 관계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이 소책자가 출간될 수 있었다.

이 소책자가 한국 순교자들의 순교 영성을 돌이켜 보게 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위대한 신앙 유산을 우리 자손들에게까지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주님께 이런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올린다.

 

북한산 아래 정릉골에서

안충석 신부

제 1장 순교자는 어떤 분들인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완덕을 향하는 여정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그렇게 완전한 사람(마태 5,48 참조)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처럼 완덕의 길로 나선 사람 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신앙의 목적인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완덕을 닦아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을 증거하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내 뜻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낙원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뜻대로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완전한 응답이란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처럼 언제나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그것이 바로 완덕을 향하는 신앙생활이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맡기면서 그 분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실 수 있었다.

순교자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걸고 하느님의 진리와 자신의 신앙을 증거한 사람이다. 그렇게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 걸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읽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께 의지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이 따르면 순교에 대한 사 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순교는 최상의 은총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최고 표현이며, 가 장 그리스도를 가까이 닮고 그분과 일치하는 방법이며 최고의 성성에 이르는 길"이다. 이 정의처럼 순교자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른 사람이다. 순교자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이 몸소 보여 주신 십자가의 사랑의 모범을 따라 그대로 증거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순교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최상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제자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신 스승을 본받고 피를 흘려 스승과 동화되는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로 또 사랑의 최고 증거로 여겨진다. 그러한 은혜가 소수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모든 제자는 그 준비를 갖추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교회가 늘 겪고 있는 박해 가운데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 다."(<교회 현장>, 42항)

이처럼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철저히 응답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끊임없이 좇아야 할 모범적인 삶을 산 것이다.

그렇기에 순교자들을 두고 이들이 바로 주님의 "얼굴을 찾는 세대"(시편 24,6)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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