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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10장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기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외치던 세례자 요한이 잡히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이제 예수님의 기쁜 소식, 복음은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 집중된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그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살아 나아가기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복음서 전체는 하느님 나라의 삶을 지상적 형태로 드러낸다.

예수회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1905-1978년)는 자신의 책 <흔들리지 않는 신앙>에서, 복음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를 드러낸다고 했다. 즉 복음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기 이전에 그분 자체”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하느님께서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사람과 오직 하나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우리가 강생 이상의 것을 상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하느님에게, 스스로 인간이 되시는 것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실 수 있는 길이란 없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는 받아들이면서도, 엄격한 의미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근본적 교리를 거부하거나 또는 그것에 대하여 이런저런 의의를 표면한단. 그 순간 복음 메시지가 왜곡된다.

복음은 전체로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진정한 복음이다. ‘말씀은 한 덩어리다’라는 파스칼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복음은 우선 인간이 모든 시대에 걸쳐 품어 온,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누구신가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바로 이 하느님의 정체에 대한 계시와 관련해서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제시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바를 실행하라. 이제 그대들이 하느님에 관해 알게 된 바와 일치되게 살아라’라고 말하기 위해 말이다(<흔들리지 않는 신앙>, 375-376쪽).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는 당신의 방식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방식대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드러내신다.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안에 온전히 품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시면서 하느님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하느님은 오직 사랑이실 뿐이다. 우리로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소가 내어준다는 표시로 선물들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을 참으로 내어 주는 데 도달하지 못한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며, 우리가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능력인 우리의 인간성을 완전히 실현시키게 하시려고 당신이 베푸시는 그 선물을 받아 달라고 간청하신다. 우리는 오직 인간 이상이 됨으로써만 인간이다.

복음은 하느님의 베푸심을 받아들이는 조건에 관한 말씀일 뿐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다시 말해서 우리를 당신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말하고 있다. 그분을 닮아야 한다. 하느님은 다른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하느님을 닮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사랑하시듯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하느님이 하느님이시듯 하느님다운, 그분과 같은 존재가 되는 일이다. 최후 만찬 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흔들리지 않는 신앙>,380-381쪽).

 

여기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란 의미는, 앞서도 말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신 것이다.

 

사실, 의지·행위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느님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자명하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은 우리의 형제인 인간에 대한, 말뿐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닌 실제적 사랑이다. 우리 모두는 요한 1서의 다음 구절을 알고 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4,20). 이보다 더 진실인 것은 없다.

다만, 우리는 오늘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순수할 수 없다는 것을 잊기 쉽다. 뤼박 신부는 아주 무시무시한 한마디를 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밖에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란 자기 사랑의 연장일 위험이 매우 크다.” 조금이나마 심리학자가 되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맡겨 두면,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느님만이 절대적으로 사랑하시며, 우리를 당신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하게 해 주신다. 우리 이기심의 죽음은 연옥과 더불어서만 완전해지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희망인 것이다(<흔들리지 않는 신앙>, 382-383쪽).

 

무엇이든 인간이 하는 일은 크든 작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희망한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행복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희망인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톨릭 소설가 조르주 베르나노스(1888-1948년)는 “행복에 대한 너의 생각을 말해다오 그러면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철학에서 말하고 있는 ‘가치’라고 부르는 개념이 들어있다.

 

우리 자신보다 더 ‘값나가는 것’, 또는 그것이 없이는 우리가 ‘값진’ 존재일 수 없는 그것을 나는 가치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을 바쳐도 좋은 것, 삶보다 우위에 있는 삶의 이유, 그것이 가치다. 중대한 불의를 저지르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이 경우 정의가 ‘가치’다. 거짓말하느니 고통을 감수하겠다! 그렇다면 진실이 ‘가치’다. 양심이 명하는 것,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이것을 나는 ‘가치’라고 부른다.

가치에 대한 감각을 갖는다는 것과 양심을 지닌단 것은 똑같은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그가 가치들을 선택하고, 그것들을 위해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어떤 이가 양심을 명령적 요구인 가치들에 자기 삶을 종속시킨다면, 다시 말해 순전히 이기적인 것일 수 있는 행복을 거부한다면, 그는 이미 어떤 점에서는 하느님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분을 아는 것이다(<흔들리지 않는 신앙>, 388-389쪽).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간 사람, 외과 의사 장기려(1911-1995년) 박사의 일생을 살펴보자. 평안북도 용천에 태어난 장기려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앙인이었다. 개신교 장로교 소속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삶 전체가 그리스도교의 복음으로 충만하였다.

일제강점기 경성의학 전문학교는 조선인을 1/3밖에 뽑지 않았다. 장기려 박사는 경성의전에 지원하고 이렇게 기도했다. “제가 의사가 되면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경성의전을 수석으로 졸업하고(1932년), 의사로서 교수로서 진료와 연구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졸업 후 경성의전 외과학교실에서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였던 백인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과학에 입문하였다.

그는 이미 경성의전 입학 때부터 돈이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던 하느님과의 약속을 잊을 수 없었다. 복음서의 산상수훈 말씀대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환자들의 의사가 되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40년 교수로 미래가 보장되었던 경성의전에서 기독교 계열의 평양 기휼병원 외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해 9월에 일본 나고야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조선인 의학박사는 10명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고, 그해 12월 평양 국군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던 장기려 박사는 남한으로 피난을 떠난다. 양친과 부인, 자녀까지 열 명의 가족이 움직이는 것이 위험하다 생각하여 가족이 따로 이동하였다. 이때 수많은 피난민 속에서 둘째 아들 장가용을 제외한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장기려 박사가 차 안에서 스치듯 보았던 가족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북측에 두고 가족들을 그리는 마음이 장 박사가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부산으로 피난 온 장기려 박사는 1951년, 전영창(거창고등학교 설립자)과 함께 교회의 창고를 빌려 ‘복음진료소’라는 이름으로 무료진료를 시작하였다. 전쟁 중이라 모든 상황이 열악하였지만, 장기려 박사는 뛰어난 의술과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했다. 이후 UN에서 지원해준 대형 천막 세 동으로 진료실, 수술실, 입원실을 만들고 ‘천막병원’을 운영했다. 사과 상자를 모아 수술대를 만들었고, 전기가 모자라 촛불을 켜고 수술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장 박사는 무려 6년 동안 매일 100여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했다. 부산시민들은 무료로 진료해준 장기려 박사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모금하였고, 1956년 마침내 천막을 걷고 현대식 병원을 세웠다. 지금 부산 아미동 송동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이다. 장기려 박사는 이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가난한 이들과 소외 계층을 향해 의술을 펼치고 의료복지 사업을 진행시켰다.

장기려 박사는 따뜻한 인술만큼이나 의학적으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43년 김일성대학 의학교수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간암 절제수술에 성공하였고, 1959년에는 간우협절제수술(간 대량 절제수술)을 우리나라 최초로 성공하였다. 당시 열악한 의료 환경을 생각하면 그의 수술 성공은 한국의학사에서도 기념비적 의미가 있다. 장기려 박사는 간과 관련한 연구와 수술 등의 업적으로 많은 간질환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간 연구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또한 외국의학 서적 번역하여 교재를 만들고, 고신대, 부산대, 가톨릭대, 서울대 등에서도 제자들을 가르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공적으로 장기려 박사는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9년 ‘라몬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부분), 1995년 인도주의실천의사상 등을 받았다.

1985년 40년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특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장기려 박사는 수많은 이산가족이 있는데 자신만 특별 혜택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만남을 거절했다. 1년 뒤 장 박사는 가족사진과 편지, 부인이 녹음한 테이프를 전달받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내기도 했다. 장기려 박사는 북에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45년을 홀로 지냈다. 잠시의 이별이 영영 이별이 된 슬픈 가족사이다.

장기려 박사는 1992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진료를 위해 왕진 가방을 들고 달려갔다.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던 그는 199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새벽,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기려 박사는 의사로서의 초심과 약속을 잊지 않고, 평생 청빈의 삶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으며, 2006년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장기려 박사는 마치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시며 기도하신 것과 같이, 항상 수술하기 전에 기도하며 자신의 모든 의료 행위를 주님과 함께했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쁜 소식, 복음 전체를 평생의 삶 자체로 증거했다. 장기려 박사가 살아갔던 사랑의 의술과 복음적 청빈은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 살아 나아가기였다. 젊은 날 그의 다짐과 같이 장기려 박사는 진복팔단의 참된 행복을 지상에서 성취한 사람이었다.

전쟁과 피난살이, 불안과 공포 그리고 좌절 속에서 저마다 생존 자체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을 수 있던 시절, 또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남을 행복을 파괴할 수도 있었고, 약자를 억누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이기심도 쉽게 용납될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장기려 박사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을 깊은 신앙으로 체화한 사람이었다. 고난의 시절, 욕망과 무절제의 시대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어려운 이웃 사람들의 생명과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가진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한 것이다. 장기려 박사는 복음서가 전해주듯,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다 바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 시대에 보여 주었던 것이다.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두 걸음이 있다고 했다. 우선 이를 테면 정의, 진리, 자유라는 비인격적 가치들에서 어떤 존재로 넘어가야 하고, 또 그 가치들의 기초가 되고 그것들을 사는 살아 있는 인격으로 넘어가야 걸음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가치의 기초가 되시고 사랑을 사셨던 예수님, 바로 그 사랑을 인격의 관계로 옮겨 놓으신 예수님을 믿고,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은 자유롭고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믿을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다. ‘내가 단지 비인격적인 가치들, 인간 양심의 요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가치들을 몸소 사시면서, 동시에 그 가치들의 기초를 세우신다는 것을 믿는 것은, 가치들 중에서도 다른 가치를 능가하는 하나의 가치, 즉 사랑이라고 불리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랑은 비인격적일 수가 없다. 사랑은 반드시 한 인격에 대한 한 인격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흔들리지 않는 신앙>, 392쪽).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해주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죽음, 그 자체로 바로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알려주셨다. 이로부터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 은총, 곧 하느님의 선물이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써, 인간에게 당신의 베푸심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주신다(<흔들리지 않는 신앙>, 393쪽).

 

신앙을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니지 않은 이들과 다른 것은 이렇다. 즉 믿음이 없는 이들은 자기 양심만을 따르면서 가치를 실현하지만, 믿는 이들은 자기 양심을 따르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그것은 내가 진리, 아름다움,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들을 존중하고 증진시키라고 내게 명하는 내 양심을 따르면서, 나를 사랑하시는 어떤 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흔들리지 않는 신앙>, 394쪽).

 

앞서 보았던 장기려 박사의 삶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생의 참된 가치를 실현했다고 본다. 그러한 삶이 가능했던 것은 추상적 가치를 인격적 가치로 현실화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그래도 따랐기 때문이다. 그의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장기려 박사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굴곡진 역사의 깊은 터널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은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 살아 나아가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기, 바로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기다.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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