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강
15. 참된 겸손
요안의 생애에 있어서 자기 혐오에서 흘러나온 파괴적인 실과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 바는 참된 겸손의 개념이 뚜렷해진 사실이다.
이 덕은 어떤 결핍 위에가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의 풍요함 위에 기초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나 자신만으로는 부패되었고 나 자신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만 상정(想定)에 지나지 않는다. 겸손은 진리이며 겸손이 진리라는 한 가지 사실은 아무도 “혼자서”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무도 하느님의 사랑 밖에서 존재하지 않았고 또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겸손이 진리라는 또 한 가지 사실은 하느님께서 한순간도 사람을 사랑하시지 않으신 적이 없으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각 사람을 예외 없이 사랑스럽도록 만드셨다는 점이다. 겸손이란 결코 자기 학대나 자기 혐오가 아니다.
우리가 습관적이고 소극적으로 인간을 말하는 소위 “허무”와 “부패”에 우리의 지도적 주의를 집중시킨다면 심리적으로 보아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영신적으로 보아 그릇된 사상을 이끌어 내기 쉽다.
요안의 방비책을 말살시킨 데서 우리가 보았듯이 교만에 대한 치료법은 사랑이다.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자유스러워질 수 있고, 자기 자신으로 진실해질 수 있고, 교만의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고, 우리 자신으로 진실하게 출발할 수 있고 우리 자신과 우리의 대일 관계에서 사람들을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볼 수 있다.
영신 생활로 보아서 기초와 출발점이 되는 것은 겸손보다 오히려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로부터 예수님을 통해서 받는 사랑말이다. 밀접한 대인 관계로 만나게 되는 예수님의 성사를 통해서 받게 되는 사랑말이다.
내가 뜻하는 것은 부패 되거나 허무화된 인간을 말함이 아니고, 우유지 연약성을 뜻한다. 참된 겸손이란 진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첫째로 자기 자신이 근본적으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진 아름답고 존귀한 걸작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둘째로, 자기 자신을 쇠약하게 만든 자신의 결점과 죄를 알아내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 중에 하나라도 결하면 참된 의미의 겸손이 될 수 없다.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첫째 요소를 결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관적인 사람은 발전은커녕, 오히려 타락한 위험이 많다. 진정한 그리스도 신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비관론자 혹은 염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비관이나 실망을 모르는 낙천자가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성신으로 말미암은 의화와 평화와 즐거움에 있느니라.”(로마서 14,17)
“너희는 언제나 주 안에서 즐거워하라. 다시 말하노니 즐거워하라.”(필립피서 4,4)
즐거움이야 말로 중요한 근원적 덕성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우리는 모두 요안같이 딴 사람의 쇠약함과 미음과 거짓 사랑 그리고,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아 인식을 잘못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되었기 매문에 우리가 우리 존엄성을 참말 깨닫기 위해서나 하느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 조건 없는 사랑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외의 것에서 자신의 가지를 찾아 헤맨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의 무한한 가치와 보람을 찾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이 어찌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보냐. 그것은 마치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천 길 낭떠러지의 깊은 골짜기에서 캄캄한 어두움과 온갖 슬픔과 전망 밖에 못 보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조건 없는 사랑의 위대한 힘으로 이같이 한 걸음 한 걸음 광명을 찾아 밖으로 나갈 때, 오색 찬란한 무지개의 빛깔로 번쩍이는 자신의 황홀한 모습을 보게 되리라. 그 휘황찬란한 자기의 모습을 알게 된 때, “오! 나의 아름다움이여”하고 놀라 외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 것이다.
그처럼 괴롭고 어두웠던 깊은 낭떠러지는 한갖 발밑에 내려다보이고, 동편 온 하늘을 담황색 고운 빛깔로 물들이면서, 바야흐로 솟아오르는 광명한 대양의 참모습을 대하게 되리라. 눈 부시 대양 빛을 받아 자신의 모습은 더욱더 번쩍이는 다이아몬드와도 같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이 태양이야말로 바로 하느님의 사랑 자체인 것이다. 그 사랑의 빚은 뭇 다이아몬드를 비추고 그로부터 반사되어 서로서로 비춰줌으로써 온 세상이 온통 사랑 속에 불타는 꽃밭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랑의 꽃밭으로 인도되는 길은 심히 힘하고 가파로운 비탈길 일런지는 몰라도 남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남을 또한 사랑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주위에 있는 수억만의 다른 다이아몬드를 보게 되고,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참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정신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참뜻을 알게 되리라. 이는 우리 힘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을 무한히 자비로운 사랑께 봉헌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