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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강

10. 인간 그 자체대로의 사랑(LOVING PEOPLE AS THEY ARE)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요안은 인간 본성에 대해서 무척 많이 배웠다. 이해하는 마음을 상대한 결과로 이웃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일생을 통해서 (전에는) 직접적으로 남을 개조하고 남을 틀에 넣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 보려고 애도 많이 썼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남의 못된 점을 지적하고 야단치고 충고하고 설계도와 같은, 달리할 수 없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더 미묘한 방식으로 남이 다른 사람이 되도록 만들려고 더 교묘하게 조종하려고 했다.

요안은 타일러 줌으로만, 지시함으로써만, 남을 개조시킬 수 있다고 여겼었다. 한 마디로, 남의 지능을 통해서만 개조해 보려고 애썼지만, 그러나 참 문제는 감정에 있었다. 공포의 감정, 미움의 감정, 사랑에 굶주리는 감정 등.

칼 라저스는 지도 방식을 세계적으로 혁신하신 분이다. 그는 교회와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30년 이상 남을 지도한 결과로 위와 같은 지도 방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고 남의 발전을 위한 방법을 추천할 수도 있고 생활의 더 만족스러운 방식에 대한 지식으로 교육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봐서는 그러한 방법이 무익한 일이고 무효과적이다. 그들이 아무리 큰 성과를 거둔다 할지라도 일시적인 개조밖에 거둘 수 없고 쉽사리 사라지고 역효과로서 본인이 그전보다 자기의 부족함을 더 심각히 느끼게 된다.”

요안이 발전한 것은 딴 사람들이 자기처럼 지식이나 학문 연구에 있어서 보다 진실한 대인 관계와 이해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개조된다는 사실이다. 보통으로 사람들이 자기의 결점을 대강 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결점은 안다.

그러면, 그들에게 이미 자란 결점을 말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만일 그들이 자기 자신을 모르면 보통으로 자기 자신을 대면하기가 너무 두렵고 너무 방어적이기 때문이다.

보통으로 야단을 치거나 그들의 약점을 말해 주면, 그들을 더 방어적이고 더 자기혐오적으로 만들 뿐이다.

사람들의 모든 결점은 자기 사랑(自愛)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병의 증세로서 그들의 약점과 방비책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병의 더 근본적인 치료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단순히 사랑하는 것이며, 그들이 방어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안전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고, 그들이 수치심을 멀리하고 변명과 반발을 멈추고 거짓된 역할이 쓸데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요안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안심한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감추거나 꾸미는 일이 없이 무엇이고 털어놓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는 또한 그들이 장점과 단점을 지닌 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들이 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기를 원한다.

실천적으로 어떻게 요안이 이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사랑은 수단만이 아니다. 사랑은 성실하고, 참되어야 한다. 남을 움직이는 어떠한 기술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람이 하느님과 일치하면 어느 정도 자신이 사랑으로 화하는 것이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함으로써, 어느 정도 사랑으로 화한 사람 자신이 남에게로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적인 수단이 없어도 사람 자신의 됨됨이가 보다 바른 사랑으로 표현된다는 말이다.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고, 「무엇인가」가 문제시된다. 요안은 자기 자신의 결점들이 본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한 탓으로 생겼다는 사실과 아주 역설적(逆說的)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그 정도 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개조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있는 그대로의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때 그들이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개조하기를 시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바로 요안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으로 됐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 자신이 자유로 택하는 시간과 정도대로 자기네의 개성에 알맞은 방식으로 방비책에서 해방되고 하느님께서 조성하신 인격을 되찾고 점점 더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될 수 있도록 진실한 사랑과 이해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진실하고 참되게 받아들임을 상대편이 깨닫게 되는 바로 그때 그는 변화되기 시작한다는 원리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뜻하는 것은 요안이 남에게 무관심하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또 요안이 책임감으로 해야 하는 권고와 꾸중과 벌과 훈계 등이 사랑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움이나 사랑의 조건으로 하지 않으면 상대편이 요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뿐더러, 그러 한 분위기 속에서 꾸중이나 훈계를 받아 주기가 더 용이하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요안의 행위를 자기계의 인격 자체를 공격하거나 반대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깨닫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안이 조건 없이 아직도 자기들을 끊임없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안이 매우 명백하게 깨달은 바는 보통으로 사람들이 민감하고 방어적이어서 결점투성이인 자기 자신으로 있기를 꺼려하고 미움과 반대를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통에 시달리는 불쌍한 인간들이 불찬성을 표현하거나 혹은 자기네의 인격이나 행동에 대한 가장 미미한 비평일지라도 자기계의 인격 자체가 직접적으로 무시당하고 배척당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을 보았다. 요안은 이러한 사랑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아주 명백히 깨달았다. 이러한 사실을 깊이 알아챈 요안은 사람들의 방비책이 머리를 치켜들지 못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고 사랑을 막는 장벽이 가로막혀질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해 주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는 사람들에게 고함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너는 너의 잘못을 보지 못하느냐”고, 그러나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결점이 많은 자기 자신들을 보기를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요안이 자기의 생애를 돌아볼 때 십 년이나 십오 년 전의 자기와 같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새사람이 된 요안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전에 그들이 요안을 알던 대로 평가하곤 한다. 이중인격자, 신경질쟁이, 이기주의자, 비겁한 자라는 등, 요안이 지푸라기로부터 다이아몬드로 환원된 다른 사람들을 두루 살펴보고 느끼는 것은 그들 또한 많이 개조되고 발전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활짝 핀 아름다운 꽃과 같이 달라졌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요안은 사람들을 어느 범주에 넣는다는 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깨닫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한번 사람을 어떤 유의 사람이라고 단정하여 수많은 범주 중에서 그가 해당되는 범주 속에 넣어 버리면 그가 해당하는 범주에 준해서 그를 취급하게 되고 반응을 보이게 되며, 그가 어떤 유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선입감(先入感)을 가지고 그를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안은 사람이란 완성되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개조되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 사람은 분류를 초월한 유일무일한 유일성을 견지하고 있는 존재로 보려고 애쓴다.

요안에 있어서 평화가 확장되는 한 가지 원인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개조시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고 더구나 그들을 판단할 필요성이 없다고 확신하는 그의 깊은 인식 때문이다. 그의 사명은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이들의 생활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자기에게 너무나 벅찬 부담이라는 것을 안다. 사실로 불가능한 것이다. 각 사람은 유일무일한 특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서 행동을 일으키는 숨어 있는 동기를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다른 이들의 여러 가지 복잡하고 미묘한 성격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해결해 줘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요안의 권위가 미치는 범위 내의 지위(부모, 선생 등)에서는 사람들이 그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찾아오면 그들의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즉, 그들의 태도나 문제 되는 내용보다 그들의 인격 자체를 인정하고 다룬다.

그의 목표는 사람들이 내부로부터 자유롭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힘을 넣어 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에게 타이른다.

“이 사람이야말로 가망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를 믿어라! 지나친 심려와 불신(不信)은 그를 점점 뒤떨어지게 할 뿐이다”라고.

“귀화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신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가 요안에 관한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어린아이와 같이 사랑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여야만 재생(再生)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요안은 모든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해함으로써 이 사랑을 상통시킬 희망이 있음을 보고 있다. 지푸라기로 느껴지는 사람의 눈에도 너무 성실하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워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그가 잘 아는 바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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