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강
9. 고통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이해하는 마음의 원리에 관해서 하나의 질문이 제기(提起)된다. “이 원리에 있어서 고통과 희생은 무슨 뜻을 갖는가?” “인간의 완성과 성숙의 성장을 위한 목적이 만족스러운 소처럼 태평하고, 자루 속의 감자처럼 맥이 풀리도록 고통을 멀리하는데 있는가?” 이 문제의 해답은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다시 요안을 전형적인 본보기로 삼아 보자.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는 고통의 가치를 깊이 깨달음으로 오래전에 지푸라기에서 다이아몬드로 환원되었다. 그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굳이 믿는다. 예수님과 더불어 매일 그분의 수난에 참여하고 그분과 같이 죽고, 그분과 더불어 부활한다. 그분께서는 모든 나약성을 포함한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성화시키고 영광되게 하실 수 있으시다고 확신한다. 그는 성신께서 성총의 물줄기를 사람 안에 침투시키시고 향상시키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의 방비책까지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선업(善業)의 완성에 이바지시키신다는 사실을 또한 인식하였다. 그는 성 바오로 사도와 더불어, “나 허약한 그때에 오히려 굳세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신앙을 가졌다.
요안은 고통이 우리 주님의 수난과 일치될 때 크나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내심이 많은 사람은 용감한 사람보다 낫다”(살로몬). 그는 힘자라는 데까지 하느님의 성충의 힘을 빌려 이제부터는 자기 혐오와 자기 방어의 결과로서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참아 견디어 자기 안에서 자기 밖으로 퍼져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고통을 막아 내려고 원하기보다 타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교제하고 그들의 약점과 잘못을 참아 주고 사랑의 제물처럼 자기 자신에게 죽기를 원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십자가를 사랑으로 포용함은 얼마나 위대한 행위인고!
사랑의 사도이신 성녀 소화 데레사의 말씀을 들어 보면, “참된 사랑은 남의 결점을 모두 참아 견디며 그들의 약함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그들이 행하는 극히 작은 덕행까지도 알아주는 데에 있다”고 하셨다.
요안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고통과 죽음을 당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미움이나 자기 염증의 희생물이 아니고, 사랑의 제물처럼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는 소극적인 자기 혐오에서 뛰쳐나와 적극적으로 남의 입장에 들어가서 남의 고통에 참여하고자 한다. 있는 그대로의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의 노력, 이것이야말로 바로 자기의 보람 있는 십자가라고 생각한다. 인격적으로 발전되고자 하는 그의 동기는 사랑하기 위해 더 큰 자유를 얻고 자유롭게 선택하려는 것이다.
이 결과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전보다 고통을 더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의 고통, 즉 남을 이해하고 참아 견디고 용서해 주는 데서 따라 오는 고통은 결점투성이인 그들과 사랑으로 일치하고, 그들과 더불어 쓴잔을 마시는 것이다.
조건 없이 사랑하려고 노력함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의 안온한 분위기와 쉬고 싶은 의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단지 감정의 느낌으로만 그치지 않고, 반드시 행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는 자기 감정을 비워 버려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느끼기 위해서는 그들을 동정해야 하고 그들의 입장에 들어가야 하며, 그들의 관점(觀點)에서 사물(事物)을 보고 느끼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원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또한 사랑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원리를 알아내었다. 사랑에는 얼마나 큰 위험이 따르는고! 사랑에는 역시 모험심이 동반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남을 충분히 사랑하려면, 남에 대한 절제 없는 애착을 방지할 힘이 있어야 하며, 남의 존엄성을 인정할 줄 알고 남의 감정에 간섭하지 않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들이 자유를 향유하고 자발적으로 성장되기 위한 요구에 흡족할 만큼 그들을 사랑해줘야 한다. 그들의 모든 불행과 고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강한 사랑을 넉넉히 소유해야 하며,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해하는 마음의 희생적 사명인 것이다.
이제 요안은 사랑의 길을 개척하신 소화 데레사와 더불어 하느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통의 가치를 찬미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하느님이시여, 당신을 위한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을 수 없나이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