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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강

11. 조건 없는 형제적 사랑

우리가 조건 없는 사랑을 관찰하는 것은 예수 성심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재는 것이다. 불쌍하게도 종교인들 중에도 “지푸라기” 같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격 발전이 제대로 되지 못한 탓도 있고, 양세니즘이나 다른 엄격 주의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엄격주의 사상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자애로운 아버지로 보여지지 않고, 미움과 조건 있는 사랑으로 우리를 들볶는 잔악한 폭군처럼 보인다. 이런 사상의 영향은 마치 다이아몬드를 깨뜨려 버리듯이 우리의 육체를 얕보고 업신여기며, 감정을 무시하고,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부패되었다고 여기게 한다. 이런 사상에서 흘리나 온 나쁜 결과는 종교인끼리도 상통하기 어렵도록 장벽을 만들게 한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요안을 감화시키고 새 출발 하도록 이끌어 올린 지도자의 교육방침 안에서 찾아낼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행적 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대의 사조, 특히, 십대의 청소년들 간에서 포착할 수 있는 행위는 유화, 온순, 예모같은 미덕을 오히려 얕보고 겉으로 억세고 거칠며 무질서하고 영웅다운 행위를 칭찬하고 선망하며, 또 이를 모방하려는 유혹에 이끌린다. 전자는 박력과 인기가 없는 여성적인 행위로 보고, 후자는 진취적이고 박력 있는 남성다운 행위로 본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완전한 사람의 모범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애로우시고 온순하시고 부드러우셨다. 동정심에 넘치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불쌍한 처지를 눈물을 흘리시면서까지 동정하시지 않으셨던가?

 

“내 마음이 양선하고 겸손함을 내게 배우라. 이에 너희 영혼에 평안함을 얻으리라.”(마테오 11,29-30)

 

동양 사상에도 「덕재중용」(德在中庸)이란 명언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요사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인격의 완성을 기한 사람은 남성의 특성과 여성의 특성이 서로 조화를 이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기름은 모든 액체보다 나은 것과 같이, 온순은 모든 행동보다 낫고, 다른 행동을 지배해야 된다.”(성 프란치스코·살레지오)

 

이해해주고 조건 없이 받아들여 주며, 믿어주고 자유를 주었던 요안의 지도자가 가졌던 참된 사랑의 정신이 성 바오로 사도께서 피력하신 「사랑의 특성」 안에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해 낼 수 있다.

 

“사랑은 관인(寬仁)하고 어질도다.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고, 거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지 아니하고, 사익을 도모하지 아니하며, 노하지 아니하고, 당한 욕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즐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진실을 즐기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인내하는도다. 사랑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산 샘물이니라.”(코전 13,4-7)

 

성 바오로께서 사랑에 대해서 인내를 특히 강조하셨으며, 소화 데레사께서도 마찬가지셨다. 그뿐 아니라 성녀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죄와 악이 가끔 나약성으로 말미암아 나온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인식하셨다.

인내의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우리 이웃에 대해서 자애롭고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받아들이고, 참을성을 가지고 조건 없이 그들을 사랑해 준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네들의 결점이나 그네들 안에 있는바, 우리가 싫어하고 멀리하고 피하려는 점들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소극적인 방법을 취한다면 어떤 견과가 나오겠는가?

조금이라도 신경질이나 비판을 당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상대편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같은 모양으로 성녀 소화 데레사께서는 사랑은 전달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아셨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마음속 깊이 가 두어 눈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셨다.

 

“아무라도 등불을 켜 모말 밑에 두지 아니하고 오직 촉대 위에 두어 하여금 집 안에 있는 모든 이를 비추게 하느니….”(마테오 5,15)

 

더군다나 인간의 약함이 겉으로 아주 악하게 보이는 여러 가지 행동의 악을 계기한다. 형상적 악과 질료적 악을 구별해야 한다. 질료적 악은 겉으로는 악하게 드러날지라도 사실상 숨어 있는 어떤 이유로 말미암아 양심상으로 죄가 성립되지 않음을 말한다.

요안이 이 사신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그는 자기 자신의 비관적인 마음으로부터 사람들의 행동에서 너무나 많은 악과 잘못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어느 정도 조건 있는 사랑과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방비책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욕정, 습관, 공포, 강제 따위가 윤리적 탓을 어느 정도 감소시킨다는 것을 교리지식을 통하여 알고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 방비책이 사람의 행동에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그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그는 이웃 사람들의 잘못이 인간적인 면에서 직접적으로 요안에게 누를 끼치는 경우 일지라도 그는 이해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함으로써.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 와 자기 자신의 인간적인 나약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야말로 이해하는 마음 바로 그것인 것이다. 「인자한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자에 깊으셨던 고 요안 XXII세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할퀴는 것보다 어루만지는 것이 더 낫다.”

 

요안이 이해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던 당시에는 남이 비평하면 변명하기에 바빴고, 남이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면 증오감에 불탔고, 남이 자기에게 해를 끼치면 앙갚음을 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혔었다.

그러나, 이해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 현재의 요안은 방어하는 마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마침내 그는 불친절하고 반감을 품은 듯이 보이는 사람들의 비평과 비난, 그리고 비위를 거스르는 행동들이 기실 요안을 미워하고 공격한다고 보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마음속 깊은 구석에서 사랑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된 지금은 어느 장소나 어느 모임에든지 비록 자기를 반대하고 증오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 일지라도 자유스럽고 두려움 없이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고, 그들 속에 끼일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적의를 가진 악한 사람들이나 혹은 모든 이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 있고 죄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들과도 안심스러이 상종할 수 있게 되었다. “참사랑은 무장을 해제시킨다.” 물론 그들에게 물들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유혹에 빠질까 봐 조심은 하지만, 사랑의 본질을 파악한 요안은 뻗쳐 나가지 않고, 위험과 모험을 회피한다면, 사랑의 사명을 다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요안은 예수님께서 이미 하신 것처럼, 죄인이나 악인이나 상관치 않고 그들과 더불어 자리를 같이하며, 먹고 마시며 친밀하고 긴 담화를 나눈다.

자포이신 성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수많은 교회의 형제들이나 정면적으로 교회를 반대하고 원수로 자처하는 무신론자 나 유물론자들, 더 나아가서 온 세계와 더불어 대화하려는 정신은 사랑의 같은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를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태도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사도직의 천재적 비결이다.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바오로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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