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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강

8. 자기 사랑(자기 자신을 사랑함)

영신 생활에 있어서 “자기 사랑”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요안의 경험을 보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이웃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 사람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해 답을 제시해 준다. 바꿔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이웃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말하자면, 남에게 베풀어 줘야 하는 미덕을 자신에게도 베풀어 줘야 한다. 즉, 인내, 친절, 온순, 용서, 온화 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내”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너 자신을 죽이지 말라”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염증에 빠지는 것은 애덕과 의덕을 거슬리는 죄가 아니겠는가?

보배로운 다이아몬드인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명예 훼손과 모욕, 용서해 주지 않음, 분노와 원망 따위는 애덕을 거스르는 죄들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인격적으로 자기 자신을 자해(自害)하거나 죽이는 행위가 아닐까? 주님의 사랑의 큰 계명에서 “우리 자신을 잘 대우하라”는 뜻이 함축적으로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빼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의식 중이나 무의식중을 막론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무시하고 학대하는 행동을 겸손의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는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겸손이야말로 진리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또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드셨으므로 우리는 사랑스럽고 또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겸손과 모순이 되며, 진리와도 모순이 된다.

사랑의 큰 계명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느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함이다. 이웃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미소한 형제 중 하나에게 베풀 때마다 곧 내게 베푼 셈이니라.”(마테오 25,40)

 

마찬가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교리상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걸작이며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와 이유를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행위가 된다.

심리상으로도, 자기를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또한 사랑할 수 없다.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요소와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면 남에게 있는 것(요소와 자격)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도 “이웃처럼 너를 사랑하라” 하시지 않으시고 “너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지 않으셨던가?

위대한 그레시아의 철인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은 이런 뜻에서도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알면 알수록 남을 더 잘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서 온 인류를 알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남을 또한 더 사랑할 수 있다.

그래소 신부가 쓴 “신약에서의 영적 생활”이란 책자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우리는 발견한다.

“형제적 사랑의 계명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너 자신처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사랑”은 함축적으로 우리에게 부과된 명령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고, 우리 자신을 알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에 근거를 둔다.

나 자신을 사랑함은 나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아내고, 나 자신을 피조물로서 받아들이고, 제한된 나 자신, 그러면서도 독자적(獨自的) 실재(實在) 속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모습으로서의 나 자신을 받아들임을 뜻한다. 또한 인간의 공통적인 본성(本性) 때문에 나의 어두운 면(面), 또는 내가 저지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악의 가능성도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또한 이 사랑 즉 참된 “자기 사랑”은 형제적 사랑보다 시간적으로 앞서는 것이라고 보면 안 된다. 나 자신의 발견과 나 자신의 인격 발전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참된 통회는 소극적인 자기 혐오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 허약한 그때에 오히려 더 굳세다.”(바오로 사도)

 

우리는 범죄한 후에 무엇을 느끼고 뉘우치는가? 보통으로 우리가 법을 거스렸다면 더 못된 사람으로 전락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후회하고 자기 혐오에 빠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좀 더 고차적이고 통회의 본 의미에 마땅한 느낌과 뉘우침은 무엇이겠는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무시하고 거절하고 받아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고 뉘우치고 아파하는 마음이 그분의 사랑과 용서를 훨씬 더 수월하고 신속하게 이끌어 들이는 첩경이 아니고 무엇이랴?

요안은 이 원리를 깨닫게 되어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자기가 죄에 떨어질 때마다 더욱더 자기 자신의 나약성을 인식하게 되어 겸손해지고,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더욱더 절실히 깨닫게 되어, 자기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비적 사랑을 현양하고 영광되게 한다.

이야말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드는 훌륭하고 찬양하여 마지않을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죄까지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복된 탓”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내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요안은 “자기 사랑”을 실천적인 면에 응용하게 되었다. 요안은 죄를 범한 후에는 가책의 기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었다. 특히 불순한 죄나 분노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오랫동안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우울하고 괴로웠었다.

그전에는 이런 가책의 기분을 통회하는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 그는 그런 감정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수작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참된 통회의 태도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저주스럽게 느끼며 괴로운 감만 일으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회랄 수는 없다.

이제 요안은 범죄한 후에 습관적으로 자기를 혐오하던 기분이 사실 무가치함을 깨달아 그러한 마음의 상태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자기 혐오로부터 흘러나오는 이런 감정들은 흔히 참된 의미의 통회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방비책을 조장시키는 결과 밖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죄를 유도해 내는 역효과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죄악에 빠진 다음에 자기 혐오의 감정에서 빠져나와 다시 용기를 내어 새 출발을 하지 못하고 그 감정에 머물러만 있게 되면, 급기야 이 기분들은 점차 자기 학대와 실망으로 이끌리게 되어, 자포자기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기 때문이다. 비유로 말하면, 독약을 마신 사람이 해독제를 쓰는 대신에 다시 독약을 마시는 어리석은 짓과 같은 현상이다.

죄를 범하는 한 가지 큰 이유는 자기 혐오로 말미암는 것인데 여기에서 헤엄쳐 나오지 못하는 한, 죄에서 멀어질 수는 없다. 따라서 쓸데없는 자기 학대의 결과는 결국 더 많은 죄 들을 번식시키는 온상의 역할을 할 따름이다.

“남을 사랑하라”는 계명 안에는 “남을 용서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남을 용서해 주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용서해 줄 의무가 있다. “남을 사랑하라”는 계명 안에는 “남을 참아 주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참된 의미에서의 사랑이라면 남에게 하는 것처럼 나 자신의 잘못을 또한 용서해 줘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째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는가? 죄에 빠진 상태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의심하는 상태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죄에 빠지는 그 자체보다 더 악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의 학문에 있어서의 위대한 전문가이신 성녀 소화 데레사의 다음 말씀은 우리의 견해를 정당화시켜 주기에 넉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겸손한 마음으로 낮추고 우리 자신이 지닌 결점을 온화한 마음으로 참아 견디는 것만으로 넉넉하다. 그것은 참된 성덕이다. 만일에 우리의 결점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드릴 위험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겸손해 지기 위해서 고의로 결점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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