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강
구원의 손길을 갈구하는 요안
3장 구원의 손길을 갈구하는 요안
요안은 이런 분이 나타나 주기를 은연중 갈망하고 있다. 그런 분이 나타나 주기만 한다면, 요안은 찢어지는 듯한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새 출발의 효시(嚆矢)가 될 미소가 새어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그렇게 조건 없이 사랑해 주고 받아 주는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 그분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원래 요안은 자기 마음을 남에게 드러낼 용기가 없다. 너무 소극적이고 소심하다. 그러나, 심적 고통이 너무 심할 적에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떤 친구나 스승 혹은 지도 신부를 찾아가서 마음을 터놓고 싶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답답한 마음이 다소 후련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주저되는 마음을 용기 있게 억누르고 분연히 일어났다. 평소에 존경하던 스승을 찾아갔다.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고 충고와 격려를 받으려고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었다. 그러나, 그분은 자기에게 흥미도 없고 아랑곳도 없는 문제라는 듯이 요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도무지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역겨웠다. 요안은 후회했다. 오히려 마음만 더 괴로워지고 기분만 상했다. 다시 친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왕 내친걸음이니, 결과야 어떻게 되든 몽땅 털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한테서도 실망 이외 얻은 것이라곤 없었다. 그는 요안의 말을 듣고 나서는 넌 왜 그리 옹졸하고 못났느냐는 식으로, 요안에게 사뭇 훈계조로 말한다. 요안은 아니꼬웠다. 다시는 그 따위에게 내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갈수록 요안의 마음 안에 꽉 긴 먹구름은 걷힐 줄을 몰랐다.
괴롭고 외로운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요안은 어느 날 마음을 고쳐먹고 지도 신부를 찾아갔다. 자기 마음을 드러내 보이고 하소연했다. 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는 격려는 고사하고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지도 신부는 요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를 버럭 냈다. 요안은 질겁했다. 또 실망했다.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발이 너무 무거웠다. 요안은 싸늘한 냉대에 못 이겨 남몰래 괴로워하며 울었다. 그러한 괴로움과 외로움을 안은 채 요안은 현실에 부딪히며 살아야만 했다. 그는 쥐어짜는 슬픔 속에서 울부짖었다. “난 정말 몹쓸 놈인가 봐, 아! 내가 만일 시작부터 다시 새 출발 할 수 있다면… 현재와 다른 분위기 속에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요안의 푸념 속에서 마음의 고통에 대한 타개책이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누가 그의 말에 관심을 기울여 귀담아들어 주고, 해결하는 길을 열어만 준다면…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만일 귀화하여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만일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능히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마태오 18,3, 요왕 8,5)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요안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도 허망한 꿈도 아니다. 오히려 어느 모로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어느 날 저녁 요안은 다시 어떤 지도자를 찾아가서 자기 자신의 결점과 허물을 죄다 이야기하였다. 그 지도자는 다 듣고 나서는 요안이 그토록 심각하고 신중하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한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요안, 너는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공연히 마음을 괴롭히고 있구나. 절대 큰 문제가 아니야. 작은 문제를 일부러 큰 문제로 만들지 말라. 그만한 잘못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하면서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듯 오히려 가소롭게 넘겨 버린다.
요안은 속으로 <이 사람은 내가 그토록 심각하게 얘기한 것을 남의 속도 모르면서 그토록 경솔하게 다룬단 말인가?>하고 비탄했다.
<내가 다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이 이상 더 이야기해 봐야 별 소용없다고 생각한 요안은 되돌아오고 말았다. 요안은 차라리 모든 것을 체념해 버렸으면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더 괴로워만 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숙명적으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므로 체념만으로 그것이 해결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요안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찾으려고 제법 알려진 분을 찾아가 의논하기로 했다. 그러나, 얘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말을 중단시키고는, “요안, 내 이야기나 좀 들어 보게. 난 요안보다 더 많은 체험을 했고, 사회적으로도 알 것은 다 알게 되었단 말야. 자네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깨닫는 점이 많을 거야” 하면서 장황하게 자기 과거의 체험담만을 늘어놓았다. 마음을 털어 내놓고 위로를 받으려고 찾아갔던 것이 오히려 현재의 심정으론 아무런 흥미조차 없는 지루한 이야기만 실컷 듣다 온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두고, 혹 떼려다 하나 더 붙였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요안의 마음을 풀어 주기는커녕 속 시원히 자기를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그 지도자는 자기의 체험담을 들려줌으로써 자기의 과거가 요안이 당면한 현재의 심각한 문제를 풀어 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모양이다. 하기야 이미 지나가 버린 자신의 과거지만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즐거움은 있었으리라.
요안은 그의 체험담을 통해서 다소의 위안은 느꼈을 테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좀처럼 풀려지질 않았다. 얼마의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요안은 또 다른 지도자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다짐했다.
그분은 요안의 결점과 과오를 세밀히 분석하여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 내놓고, 고쳐 나가는 방법을 일일이 제시해 주었다.
요안은 어느 정도 속이 후련한 듯했다. 진심으로 그분의 충고와 격려, 그리고 지시를 받아들이고 하나하나씩 결점을 고쳐 나아가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열등의식이 생기고,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고, 마음은 점점 불안에 싸이게 되어 반발심이 생기는 것을 어쩌는 수 없었다. 마음은 점점 불안에 싸이게 되고 머리만 무거워질 뿐이었다. 요안은 상처받은 마음의 아픔을 그냥 지닌 채 삶을 연속시켜야만 했다. 그는 회한의 감정에 쌓여 있기는 하지만 결점이나 과오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다시 나기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세상에 나 같이 못나고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난 무가치한 인간이다. 본래 쓸모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난 본바탕이 나빴단 말야.” 한탄하다 보면, 심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요안은 이제까지 여러 지도자와 친구들을 찾아가서 자기 마음의 심각한 문제를 풀어 보려고 여러모로 어서 봤지만,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을 뿐이고. 요안이 상담자들을 찾아갔을 적마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솔직히 말해서 요안은 이제까지 자기가 찾아갔던 그 누구에게도 아직 자신의 어떤 문제도 풀어 줄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었다.
어쩐지 서먹서먹한 거리감을 느끼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어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이며 참으로 성실한 태도로 맞이해 주는 이가 없었다. 마지못해서 들어 주는 척하지 않으면 너무 사무적인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마음껏 (요안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분을 돋우어 주기는커녕 말을 가로막고, 자기의 의견을 발표하려고 서두르기가 일쑤였다. 한 마디로 성실하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요안은 세상이 귀찮아지고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