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강
이해하는 마음
4장 이해하는 마음
우연한 기회에 그 누구인가를 통해서 이해심 많은 분을 소개받았다. 상담자와 친구들을 찾아갔을 적마다, 실망감을 느꼈던 지워버릴 수 없는 과거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망설이게 하고 찾아간들 또 별수 있겠느냐는 허탈감 때문에 차마 용기가 없었으나 어쩔 수 없는 그의 조바심으로 하여금 그는 또, 한번 결단을 내려 그의 문을 두드렸다.
“그가 정말 이해해줄까? 관심을 가지고 받아들일까? 혹시나 또 실망을 주지는 않을는지?” 기대를 걸어 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실망을 염려하게 되는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이윽고 어떤 기대와 초조가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분 방을 노크했다. “들어 오십시오”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안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인사를 나누고 그와 마주 앉았다.
첫인상이 퍽 좋았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미소와 인자한 모습은 초조했던 그의 감정을 누그러지게 하였다. 어쩐지 그에게 호감마저 갔다. 그러나 과거의 상담자들에 대한 쓴 기억이 그로 하여금 아직 망설이게 했다. 요안은 주저되는 가운데서도, <이분이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분이었으면> 하는 기대에 그의 마음은 더 부풀어만 갔다. 시험 삼아서 우선 보편적인 자기 기분을 말하기로 맘먹고,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놓고는 자기가 느끼고 체험한 바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 같은 미소와 관심을 보여주는 그분의 빛나는 두 눈은 요안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요안: “선생님 저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마음은 늘 괴롭고 착잡합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야말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만사가 귀찮고 살기조차 싫습니다.”
상담자: “불행하다고 느끼시는군요?”(상냥한 표정으로)
요안: “네, 그렇습니다. 제 성질을 고치려고 애써 봤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상담자: “힘만 많이 들고 효과는 별로 없었단 말이지요?”(더 계속해 보라는 듯 대꾸해 준다.)
요안: “네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도 저를 사랑치 않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무시하고 친구들이 따돌리고-솔직히 말해서 친구 같은 친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상담자: “외로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느끼는 거죠?”(사뭇 동정하는 빛이다.)
요안: “그렇습니다. 참말-너무나 외로웠습니다.”(진정으로 이해해주는 분을 만났다고 생각한 요
안은 그분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요안: “부모님께 순종하고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를 많이 애썼지만 허사였어요. 한마디로, 부모님들의 요구는 너무 지나쳤습니다. 무리한 요구를 어떻게 만족시켜 줄 수 있었겠습니까?”(그는 흥분되어 반문한다.)
“예를 들자면, 부모님이 엄격하고 고루한 옛날식으로 날 취급하고 통 이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자기네 고집대로만 했으니까요. 과거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들이 공연히 저에게 야단을 쳤었지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보다도 전 가까운 친구를 만들려고 애썼지만, 제 맘을 몰라 줄 뿐, 어른 이 된 지금에도 집 안에만 들어가면, 제 아내의 등쌀에 미칠 것만 같습니다.”(하소연한다.)
상담자: “요안은 남들이 당신을 오해하고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지요?”(그냥 더 계속해서 말해 보라는 시늉을 한다.)
요안: “네, 네, 네. (어쩌면 이렇게도 자기 마음을 이해해줄까 하는 반가움에서) 그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무엇이나 잘못된 것은 내 탓으로 돌리는 군요, 정말 기막힙니다.”(거리낌 없이 마구 쏟아 놓는다.)
상담자: “그러니 타인들이 책임을 미룬다는 기분이 들죠?”(가볍게 응대해 준다.)
요안: “물론 그래요. 선생님.”(요안이 이제까지 상담자의 태도와 반응을 보고, 또 말을 듣고는, 이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구나, 생각하고 오랜만에 흐뭇한 기쁨을 느낀다. 이만큼만이라도 자기 마음을 드러내놓고 보니 이상하게도 속이 시원했다. 이쯤 되고 보니 이야기하고 싶은 의욕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참된 이해일까, 끝까지 받아들여 줄까 하는 의심 때문에 조심스럽게 나가기는 한다. 요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잘못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쓸데없는 비평을 늘어놓는다. 부모와 윗사람들을 원망하는 이유를 설명하다 보니 자기 마음에 잠재되어 있던 미움과 반발심 같은 좋지 못한 감정이 솟아올라 격한 어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해하는 지도자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착심해서 들어 줄 뿐만 아니라, 요안의 말하는 뜻과 그 안에 흐르고 있는 감정까지도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뿐 아니라, 요안의 이야기의 뜻을 파악하고는 그 뜻을 더 명백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서 질문을 던져 준다. 자기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동정한다는 것을 요안 자신이 스스로 느끼도록 충동하는 것이다. 상담자가 이처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가면서 요안을 다루었기 때문에, 그는 감동되어 흐뭇한 기분으로 그분에게, 꼭 묶어 두었던, 고민 보따리를 풀어헤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 지도자는 요안이 진술한 문제를 완전히 분석해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고 오히려 요안의 전체적인 생각과 감정 그리고 잘못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요안의 그릇된 감정과 결점과 죄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좋다고 하지도 않고 나쁘다고 하지도 않는다. 또, 요안 자신에 대해서나 요안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물론 책망하지도 않고 고치라 권고하지도 않는다.
요안이 아무리 남을 헐뜯고 자신을 변명할지라도 지도자는 그의 편에 끼지도 않고 비난당하는 사람들 편에 끼지도 않는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억압되어 잠재의식 속에 감추어 두었던 감정이 솟구친다. 이제까지 그 존재 이유도 이해하지 못했던 다이아몬드를 더럽히는 여러 가지 약점이나 결점들이 비로써 요안의 눈앞에 뜨이기 시작한다.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용기가 나서 마음을 열어 놓기 시작한다. 현명한 이 지도자는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조심스럽게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분이다. 책임추궁, 꾸중, 권위부림 같은 것을 억제하려고 많은 애를 쓴다. 그분은 요안이 자기에게서 이런 태도를 느끼자마자 애써 이루어 놓은 대화가 끊어져 버리고 말 것을 미리 보기 때문이다. 이미 말한 바이지만, 요안이 조금이라도 꾸중을 듣거나 충고를 받는다면, 자기 자신이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아닌 새까맣고 보기 싫은 조개탄으로 보여져서 얘기하고픈 의욕이 사라져버릴 것이 뻔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도자가 두텁고 따뜻한 인정으로 요안의 현재 있는 그대로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는 변덕 없고 차별 없이 요안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다 가치 있고 보배로운 다이아몬드로 여긴다.
주요한 것은 요안 자신이 막힘 없이 상통할 수 있는 분을 만나는 것이고, 또 이분이야말로 상통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아마 그전에 요안이 이런 분을 만났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반도 깨달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는 요안이 상통할 수 있는 분을 만났고, 또 실제로 깨달았다. 이 지도자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고, 적극적인 태도로 요안을 대한다. 요안은 자기에게 관심을 쏟아붓는 이분에게 끌려들어 가게 된다. 그는 “나의 결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대로 이분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끼고 만족한다.
요안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얼마나 괴롭히며, 또 자기가 그들에게 느끼는 반발심을 토로하려 하던 차에 시간이 다 되어서 다음에 또 오기로 약속하고 흐뭇한 기분으로 돌아갔다.
요안은 며칠 후에 다시 그에게 가서 상담을 계속했다.
요안: “이번에는 제 가정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결혼 한지 거의 12년 되었지만 제 아내가 절 항상 못마땅하게 여기고, 경멸합니다. 그 여자는, ‘여보 당신은 왜 그리 매사에 근실치 못하세요? 당신 닮아서 저 아이들마저 저렇게 비뚤어져 가는 거요’하고 저한테만 책임을 전가 시킵니다. 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울화가 터질 지경입니다.”
상담자: “엉망이 된 가정문제가 모두 당신 탓이란 말이지요?”
요안: 네, 네. (힘없이 머리를 끄덕거린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다 어떻게 된 것 같습니다. 열등감에 자로 잡힌 듯하고 말이 적으며 친구가 없습니다. 큰아들은 까불기만 하고 말도 잘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가끔 집을 위치 나가기 일쑤니 타락할 것만 같습니다. 둘째 딸 역시 큰아들과 비슷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말괄량이입니다. 작은아들은 적극성이 없고 소극적이며, 비겁하고 남 앞에 나타나기를 싫어하며, 항상 변명을 잘합니다.”
상담자: “모두 걱정이란 말이군요.”(동정을 해준다.)
요안: “네, 왜 그럴까요? 저는 부지런하고 엄한 아버지가 되려고 하였는데 그리고 아이들을 훌륭하게 만들려고 많은 힘을 썼습니다. 항상 권고하고 꾸중하고 벌을 주었습니다. 상으로 사랑해 주고 벌로는 매를 주었습니다. 아무리 때려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자기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해 달라는 듯 호소하는 눈길로 상담자를 응시한다.)
상담자: “엄하게 다스렸는데도 별 효과가 없단 말이지요?”
요안: “네, 그렇습니다. 역효과가 날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게도 탓이 조금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그와 같이 부모님을 괴롭히는 일이 아! 그때”-(침묵)
상담자: “어렸을 때 부모님을 괴롭히는 일이….”
요안: “이제야 생각이 나는군요. 저도 실은 - (한참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고백한다.) 한번- 도망간 일이 있었죠. 집에 있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상담자: “너무 자유가 없었던 거죠?”(사뭇 동정하는 음성과 표정과 눈길로)
요안: “그렇지요. 부모님들이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두려움뿐이었습니다.”
비로소 요안은 약 한 시간 동안 자기가 어릴 때부터 당했던 괴로움과 반응에 대해서 지도자에게 조금씩 알려주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근본적인 원인을 깨닫지 못한다. 요안이 그전에 남에게 한반도 고백하지 못하고 숨겨 두었던 경험과 약점들을 조금씩 이야기하고, 이해가 가득 찬 이 분위기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직접 살펴보고 변명 없이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다. 마음속 구석구석에 끼워 두었던 모든 결점과 과오를 죄다 털어놓았다.
요안: “저는 부모님께 대한 공경심이 없었든가 싶습니다. 그때 제 행동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하는 짓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만 같습니다.”
상담자: “당신 생각에 당신의 과거가 당신 아이들의 현재 생활 태도와 유사한 점이 있단 말이죠?”
요안: “틀림없습니다. 아이구~ 참- 저는 이런 얘기를 한반도 남에게 해본 적이 없는데요….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참말 제가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그러나 어쩐지 시원하군요.”
요안은 이제까지 혼자서 고민하던 무거운 짐을, 혼자서 들고 가지 못해서 애만 쓰던 그 짐을 지금 딴 사람과 같이 들고 가게 되는 거다. 자기 자신에 관해서, 또 자기 가족에 관해서 풀 수 없었던 숙제를 이제야 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요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 어둡고 탁한 지하실 속의 꽃이 바깥으로 옮겨져서 따스한 햇볕을 담뿍 받게 되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어 마시게 되었고 땅으로부터는 충분한 수분을 빨아들이게 되었다. 시 들어가던 꽃이 다시 소생하여 활짝 피려고 한다.
그전에는 엉클어진 감정과 무의식 속에 있는 자기혐오와 열등의식 때문에 나날의 생활이 희미한 안개 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얼어붙었던 골짜기의 물이 따스한 봄볕에 의해서 막힘 없이 졸졸 흘러내릴 것만 같다.
그 인자한 지도자의 온화하면서도 자비심에 넘친 태도와 부드러운 말씨가 요안에게 이렇듯이 큰 영향을 주었다. 요안은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알게 되는 것이다. 서너 주일 후에 지도자를 또 만났다.
요안: “선생님, 그동안 생각 많이 하고 지냈습니다. 여러 가지로 살펴보니까, 우리 아이들에 대한 문제는 제가 그 애들을 여러 가지로 잘못 취급한 탓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부모들이 저에게 잘못했듯이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 같습니다.”
상담자: “요안이 받았던 영향이 요안을 통해서 아이들에게도 미쳐진 것 같단 말이죠.”(어서 말을 계속하라는 표정을 짓는다.)
요안: “네, 그렇게 여겨집니다. 제가 애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는 줄로 알았지만 사실은 감정뿐인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라기보다 저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참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요안은 지도자의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점점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 것이다.
상담자: “당신이 아이들에게 베푼 사랑이 참된 사랑일까?”하고 의심하는 것이지요?
요안: “네, 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 어린 시절에서도 부모님들은 언제나 조건을 붙여서 사랑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그것을 채우면 사랑을 주고, 못 채우면 때리고 야단을 쳤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진정한 사랑을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늘 미움과 반발심이 마음속 깊이 꽉 차 있었는가 봅니다.”
상담자: “윗사람들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조건을 제시했단 말이지요?”

이제까지 뚜렷하고 자세하게 요안의 성격을 살펴본 결과 요안의 결점과 죄와 잘못된 점들은 한 가지 큰 원인에서 유래 됨을 알 수 있다. 이 한 가지 큰 원인이 바로 자기혐오라 하겠다. 위의 삽화에서 화살표로 그려진 결점과 방비책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 간에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여러 병이나 문제로 보지 말아야 하니, 그것들은 병 자체가 아니고, 병의 증세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병으로부터 흘러나온 여러 가지 증세들이다.
이 병은 자기혐오, 자기 증오, 즉 인간으로서의 가치 상실, 사랑을 질식시킴, 그리고 자아의 가치를 묻어 버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이다. 모든 죄의 원인이 사랑의 부족에 기인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모든 율법이 사랑 안에 포함된다”라는 성경 말씀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결점과 모든 악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나중에 취급하기로 하자. 요안의 생각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심각한 이 문제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인 줄로 여긴다. 자만심 때문이라고만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요안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그와 꼭 같이 생각하는 고로 요안을 보고, “자신을 낮추라” “자신을 무가치하고 허무한 것으로 여겨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어떤 지도 신부는 요안의 결점을 하나하나씩 체계적으로 분석해 가지고, 하나하나씩 고쳐 보려고 한다. 그 지도 신부는, “일 년에 결점 한 가지씩 뽑아 버리면 성인이 되리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의심 없이 아주 틀린 원리에서 나온 말이다.
이 얼마나 진리에서 동떨어진 생각인가! 죄와 결점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적극적인 방법이 못되고, 다만 증세만 치료하려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겠는가?
쉬운 예를 들어, 여기 폐결핵 환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담당 의사가 그의 병을 근치(根治)시키는 약을 쓰지 않고 열을 내라는 약과 기침약을 쓴다면, 그 병의 증세만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는 결과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치료는 병균을 직접 죽이고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스트립트 마이싱”이나 “파스” 또는 “아시아짓트” 같은 약을 써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결점이나 죄를 제거하기 위한 선결문제는 조건 없는 사랑을 부어 주는 것이 아닐까?
에릭 프롬이 쓴 “사랑의 예술”이란 논문의 일부를 아래에 인용하겠다. 요안의 심정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이다.
“자기 공로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자격이 갖추어졌기에 사랑을 받았던 결과는 항상 의심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혹시 내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하던 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혹시 나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해주거나 기분 나쁘게 해 주면 어쩌나 하는 의심이 생겨난다. 그 사랑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섞여 있다. 더 나아가서 말미암아 받은 사랑은 쓰디 쓴 기분을 뒷맛으로 남긴다. 즉, 상대편이 나를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내가 그를 기쁘게 해 주는 그 이유 때문에 그가 날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로 나를 사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이용하는 것이다.”
요안은 남이 자기를 사랑하는 눈치를 보이면, 자기 혼자 생각한다. “내가 그이에게 어느 점에서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이용 가치가 없어지는 날에는 날 차버릴 게다.”
요안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심한 고통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은 신앙으로 많은 십자가 뒤에 숨어 있는 크나큰 가치를 인식하고 영적 발전에 힘를 기울인다. 요안은 각 종류의 기분과 복잡한 마음의 상태 속에서 하느님의 성충을 볼 수 있다. 자기 마음의 투쟁 속에서 이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일치한다.
요안은 구세주 예수께서 인간이 겪는 각 가지 괴로움을 친히 체험하셨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느님이신 예수께서는 고독과 그리움, 수치와 모욕, 배신과 저주, 근심과 공포, 갈등과 좌절 따위를 친히 경험하셨다. 예수께서는 모든 괴로움, 모든 부족함, 모든 질병, 그리고 미숙함과 불균형 등을 성화시키시고 공로가 되기 위한 재료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재료로 만드셨다.
다행히도 요안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 특히 게세마니에 대한 신심이 두려움으로 뼈저린 슬픔과, 짓눌리는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게세마니 동산으로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는 용기를 잃지 않고 있다.
“영혼을 성화하는 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성 보나벤뚜라)
게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 옆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그 마음의 고통에 자기의 슬픔과 괴로움을 합치시킬 수 있다는 신비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요안이 마음의 위로와 치료를 해 주는 게세마니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아직도 요원하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별빛도 얻어 보지 못한 채, 요안은 자기의 고통이 아주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극도에 달하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죽음의 골짜기인 게세마니에서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려고 내려온 천사를 그분은 들려 보내지 않으셨다. 요안도 진정으로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 준다면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지 않겠는가?
상처투성이가 된 요안의 마음을 그 누가 위로해 주고 어루만져 줄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