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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종말론적 영성과 강생의 영성생활

 영성이란 넓은 의미로 본다면 인가의 정신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인적 삶과 공동체 활동의 내적 원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삶의 원천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삶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적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세상에 드러내며 사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실천적인 면에서 종말론적 영성과 강생의 영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한다.

종말론적 영성생활

 종말론적인 영성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을 죄와 고통의 장소로 보고, 인간의 구원과 성화聖化는 천상적이고 종말론적인 면으로 여기는 영성이다. 따라서 이 영성에서는 초탈, 침묵, 관상, 자기 성화, 완덕 등을 강조한다. 이런 뜻에서 종말론적인 영성은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의 죽음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영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성은 자기 포기, 자기희생, 고행, 고신극기 등을 강조하는 영성이기에 교회의 영성 가운데 보수적이고 전통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상 수도회를 비롯한 여러 수도회에서는 이 종말론적인 영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모진 박해를 인내하고 자신의 목숨을 통해 신앙을 지켜낸 순교자들의 열렬한 신앙은 종말론적 영성의 모범이다. 한국 땅에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이 종말론적 영성에 근거한 순교자들의 신앙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박해 속에서도 현세의 고난과 불의를 넘어 천상의 영광을 향하는 ‘파스카의 신비’를 보았다. 구약의 탈출기에 등장하는 ‘파스카’란 ‘건너가다, 무사히 이주하여 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는 구원의 상징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신약에 나오는 예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파스카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 집으로 옮겨가 영원한 삶을 산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첫 번째 탄생인 한정된 생명에서 두 번째 탄생인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를 모범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종말론적 영성을 자신의 신앙 안에서 확인한 것이다. 신앙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본받는 것으로,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세상을 넘어서고자 하는 종말론적 영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순교자들의 위대한 신앙은 피 흘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부활을 증거한 신앙이다.

강생의 영성생활

 강생의 영성은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의 완성인 부활에 참여’하는 영성이다. 강생의 영성은 그리스도 강생 신비의 완성인 부활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기에 사랑, 봉사 활동, 헌신, 하느님의 정의 구현, 노동의 가치 등을 신앙 안에서도 실천하도록 강조한다. 결국 이 영성은 현세적인 면에서 진보적이고 행동적이다.

 강생의 영성은 그리스도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 것에 중점을 두는 영성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이 세상, 그 분으로 인해 거룩해진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완성하려는 영성이다. 강생의 영성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어려움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 등 모든 것을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려 한다. 따라서 이 영성은 성聖과 속俗, 지상과 천상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거부하며 세상의 것을 업신여기지 않고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여 이 세상의 성화를 추구한다. 즉, 강생의 영성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려는 영성이다.

 한국의 선조 순교자들은 조선 후기 계급 차별, 인간 차별의 뿌리인 반상제도班常制度를 넘어 하느님의 자녀로 서로를 바라보며 형제자매의 사랑을 나누었다. 서로 환대하며 우애를 나누는 이 사랑의 공동체에서 우리는 강생의 영성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영성을 따를 때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그래서 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역사적 인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아가시면서, 종말과 강생의 영성생활의 알파, 오메가 곧 시작이요, 마침이신 인간 완성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참된 인간의 길을 따라서, 강생육화와 종말론적 삶을 우리 일상생활과 조화로이 일치시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아래로부터 영성생활을 실천하여 하느님 나라,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 아래로부터의 영성생활

 원숭이들이 높은 데 있는 먹이를 얻으려고 발버둥 친다. 밑받침 나무를 디디고 올라섰는데도 손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밟고 있는 디딤목을 빼서 다시 위에 놓았지만 여전히 닿지 않았다. 계속해서 디딤목을 빼서 올려놓았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계속 반복해서 시도해 보지만, 여전히 먹이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의 영성생활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독일 베네딕트회 수도자인 안셀름 그린의 책 <아래로부터 영성생활>은 바로 영성생활의 정진과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손닿을 길 없는 먹이는, 곧 위로부터 영성생활을 의미하며 이는 이상적이다. 이러한 영성생활은 명백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훈련과 기도 생활을 통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들에 대해 강조한다. 이러한 실천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성서 공부를 하고, 윤리적 인내를 익히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완성에 이르는 수덕생활을 필요하다. 이는 완덕을 닦으려는 원의와 일치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상적 영성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이상에 일치하지 못하는 자신의 실제 상황에 대하여 자주 불만을 품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적으로 분열되고 병들게 된다. 이와는 달리 초기 교회의 수도자들이 수행했던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심리학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심리학적 측면에서, 인간은 자신이 처해 있는 적나라한 모습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만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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